선물 / 이정록
내가 너에게 반한 순간
너는 꽃으로 피어났지
나는 꽃병이 되겠다고 홀로 마음먹었지
잔뿌리까지 몽땅 품고 싶어서 화분이 되기로 했지
목이 긴 화병을 실금으로 촘촘히 묶어버렸지
담장 높은 곳에 화분을 외로이 올려두었지
꽃송이는 예뻤지만 화병과 화분에 갇혀버린
네 마음은 문드러졌지
네가 꽃으로 다가온 날
나도 꽃이 되어 꽃밭이 됐어야만 했는데
너와 함께 꽃다발이 됐어야만 했는데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
너는 샛별로 반짝였지
나는 밤하늘이 되겠다고 홀로 맹세했지
떠돌이별까지 다 어둠 속에 가둬버리기로 했지
은하수로 흘러가버릴까봐 멀리 올려두었지
별빛은 아름다웠지만 자꾸만 별똥별로 사라지는
네가 두렵고 무서웠지
네가 별로 반짝이는 날
나도 별이 되어 별자리가 됐어야만 했는데.
[이정록 '그럴 때가 있다'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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