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선물 / 이정록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11. 26. 14:49

선물 / 이정록

 

내가 너에게 반한 순간

너는 꽃으로 피어났지

나는 꽃병이 되겠다고 홀로 마음먹었지

잔뿌리까지 몽땅 품고 싶어서 화분이 되기로 했지

목이 긴 화병을 실금으로 촘촘히 묶어버렸지

담장 높은 곳에 화분을 외로이 올려두었지

꽃송이는 예뻤지만 화병과 화분에 갇혀버린

네 마음은 문드러졌지

네가 꽃으로 다가온 날

나도 꽃이 되어 꽃밭이 됐어야만 했는데

너와 함께 꽃다발이 됐어야만 했는데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

너는 샛별로 반짝였지

나는 밤하늘이 되겠다고 홀로 맹세했지

떠돌이별까지 다 어둠 속에 가둬버리기로 했지

은하수로 흘러가버릴까봐 멀리 올려두었지

별빛은 아름다웠지만 자꾸만 별똥별로 사라지는

네가 두렵고 무서웠지

네가 별로 반짝이는 날

나도 별이 되어 별자리가 됐어야만 했는데.

 [이정록 '그럴 때가 있다' 창비 2022]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의 아린 마음 / 백거이  (0) 2024.11.29
티눈 / 윤성학  (0) 2024.11.27
당신의 말이 떨어질때마다 난 웃었다 / 김해자  (0) 2024.11.25
屋 -집옥 / 송정란  (0) 2024.11.25
우리라는 슬픔 / 안주철  (0) 202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