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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다가 / 유병록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7. 12. 14:41

망설이다가 / 유병록

 

움직이면서도 늘 그 자리인 그네처럼

흔들리다가

 

봄은 가고

여름이 와요

그 여름에 당신은 없어요

망설이지 말라고 말해주는 당신은 없어요

 

나는 또 그네에 앉아

가만히 있어요

 

망설이는 건 자꾸 멍청이 같아서

 

사람을 놓치고

기회가 지나갈 때까지 머뭇거리고

사랑을 빼앗기지만

 

망설이는 건 가끔 설탕처럼 달아서

 

걱정도 사라지고

후회도 멀어지고

저절로 많은 일이 없어지고

 

그네에 앉아서

망설이고 또 망살이는지도 모르다가

 

가을이 올 거예요

그 가을에 당신은 없을 거예요

망설이지 말라고 말해주는 당신은 없을 거예요

 

우리 무관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그네와 나만 흔들리고 있을 거예요

 [유병록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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