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토요강좌/시의 인문학> 시간의 잔에 시를 담는 사람들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4. 29. 09:34
<토요강좌/시의 인문학> 시간의 잔에 시를 담는 사람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 시간의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쫓기는 삶’을 담으면서 살아가고,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은 바쁜 상황에서도 ‘삶의 여유’를 담으면서 살아간다. 또한 낭만적인 사람은 ‘서정적이거나 낭만적인 삶’을 시간의 그릇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담고자 하는 삶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자꾸 생긴다. 이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통계학이다. 인생은 자기가 마음 먹은대로 진행된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끈기 있게 계속해 가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내 인생의 그릇에 ‘시’를 담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시인이 된다. 시를 쓰는 일은 능력이 아니라 끈기로 얻는 결과물이다. 시 짓기의 끈질김은 모든 이론을 앞선다.

오늘의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면 망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러면서 발전해 간다”라는 희망을 본다. 시는 인간이 회복해야 할 낭만과 희망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또한 시 짓는 일은 시적 대상을 이해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것에서 포착한 느낌을 이야기로 구체화 시켜서 글로 남기는 행동이다. 예를 들어서 ‘봄이 깊어서 꽃이 떨어진다’라는 표현은 현상을 설명한 식상한 글이지만 ‘동백의 결단은 빠르다/떨어져야 할 꽃들을/금방 버리고는 자기 길을 간다’라고 하면 시가 된다.

디카시라고 문자시의 기본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문자시의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하되, 5행 이내의 짧은 언술과 사진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서 의미를 확대 재 생산하는 멀티언어 예술이다. 1839년 프랑스의 다 케르(Daguerre, Louis Jacques Mande)에 의해 카메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200년이 넘게 발전되어 오면서 그동안 많은 시인과 문학인, 언론인이 사진에 시나 좋은 문구, 또는 메시지를 담아서 발표해 온 사진시가 있다. 그러나 사진을 설명하거나 시에 사진을 덧붙이는 형태가 되었기 때문에 독창적인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디카시가 그런 수준에 머물 요량이 아니라 문학의 한 장르로 확실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와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는 디카시의 개념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디카시;dica-poem /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영상(사진)과 문자를 함께 표현한 시를 말한다. 기존의 문자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창작물로 결합한 멀티언어예술이다." 이 개념대로 디카시를 쓰면 문학으로 자리잡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기존 시를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맞게 영상과 결합, 확장한 멀티언어예술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기존 시에서 다루지 못했던 영상을 결합하여 더욱 발전시킨 문학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문제는 사진에 함의된 예술성을 작가의 진술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다. 사진의 예술성 보다는 문자처럼 하나의 기표로 본다면 문제가 생긴다. 저 위에서 말했듯 200여 년에 걸쳐서 발전해 온 사진의 예술성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사진을 모르는 사람들의 자기 변명이다. 다만 사진의 작품성도 살아나고 언술도 사진에 직접 예속되지 않으면서도 영상과 합해져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더 큰 문학적 감동이 다가오도록 하자는 방법이 내가 주창하는 디카시 짓기다. 그러므로 문자시를 배울 때처럼, 사진에 작가의 진술을 담는 최소한의 기본 방법 정도는 배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제대로 된 디카시를 쓸 수 있다. 사진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으면서 사진이 작품성의 반 이상을 좌우하는 디카시를 논하는 일은, 말 따로 행동 따로하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Cognitive dissonance)적인 디카시를 쓰라고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디카시 작품을 선정할 때 잘 됐다고 생각되는 사진이 아니면 선택되기 어려운 현실이 이 말을 뒷받침 한다. 가끔 좋은 작품이라고 선정한 작품 중에도 엉터리 사진이 있긴 하다.

다시 강조하자면, 보통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여 문자시를 쓰듯, 디카시의 영상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사진에도 작가의 진술을 담아내어야만 작품이 된다. 진술이 있다고 해서 디카시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디카시 창작에도 순서가 있다. 찍어놓은 사진에 적당한 언술(진술)을 덧붙이면 디카시가 되는 줄 착각하면 안 된다. 시적 대상에서 포착된 정서적 감흥이 먼저다. 풀샷으로 찍은 자연이나 꽃 사진 등은 주제를 담아내기가 어렵다. 그런 사진은 주제를 산만하게 하고 한 가지 주제를 담아내기도 어렵지만, 풍광을 표절하거나 그대로 베낀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 ‘얼굴’이라면 거기에 합쳐지는 시적 언술은 ‘마음’, 즉 '내용'이다. 이 둘이 시적으로 잘 조응하지 않으면 사진시의 아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회원 디카시 한 편 감상

결혼 기념일
28년째 타고 있다
눈부신 햇살처럼 살자고
환하게 웃으며
현산공원 겨울을 봄으로 물들이던 그때
계속 태우자 자작하게

_남야 김현주 시인의 디카시집 『움트다』에서


오늘 위 디카시를 선정한 이유는 사진과 시적 언술이 합해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떼어놓으면 작품이 되지 않지만 이렇게 합해졌을 때 더 큰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 상태라야 디카시의 개념이 살아난다. 사진이 좀 더 선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좋은 작품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함께 가기로 맹세하는 예식이 결혼식이다. 이날을 잊지 않고 아내에게 꽃다발이라도 선물하는 남편은 50점짜리다. 이벤트를 준비하고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도 한다면 80점짜리, 그렇게 아내를 챙기면서 평소에도 아내 말 잘 듣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100점짜리 남편이다. 반면 평생 결혼기념일은 고사하고 아내 생일 한 번 챙기지 않는 빵점짜리 남편도 많다. 반대로 남편에게 요구는 많으면서 남편 생일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아내도 점수를 주기 어렵다.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풍습은 19세기 서구 기독교 국가에서 결혼식을 했던 그 날짜에 감사예배를 드렸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엔 5주년, 15주년, 50주년, 60주년을 기념했으나 점차 확대되어서 요즘은 매년 챙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이런 이벤트를 잘해야 한다. 아내나 남편에게 서로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 있거나 서로 감사할 줄 안다는 뜻이다. 시를 쓰는 일의 근원도 찾아보면 감사하는 마음의 발로(發露)라고도 한다. 사람이나 시적 대상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시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현주 시인은 “28년째 타고 있다/눈부신 햇살처럼 살자고”라고 했다. 금혼(金婚)의 연륜을 넘어선 나이에도 저렇게 사랑을 불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부부인가? 그는 강원도 양양에 산다. 지난해 부산 영광도서에서 개최되었던 ‘한국의 디카시전’과 진주에서 열렸던 시사모 행사 등에 남편과 함께 참석했었는데 정말 금술 좋은 부부라는 인상을 받았다. 시에 등장하는 양양 현산공원은 3·1 만세운동이 있었던 곳이자 양양 군민들에게는 애환이 서려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둘은 사랑의 맹세를 했었나 보다. “겨울을 봄으로 물들이던 그때/계속 태우자 자작하게”라는 개인 상징적인 디카시다. 겨울을 견뎌내고 봄을 맞이 했던 그때처럼 사랑을 변함없이 가꾸어 가자는 맹세다. 읽는 사람의 가슴이 따뜻해진다. 김 시인처럼 자작하게 삶을 물들이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서로 다른 환경과 성격의 남녀가 만나서 ‘인생’이라는 노래의 화음을 맞추어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부부의 화음이란 내 목소리를 상대방의 음색에 맞추는 일이다. 일방의 목소리가 크면 화음은 깨진다. 김현주 시인의 부부가 서로를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를 응원한다. 은은한 화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어산 시인]

 

728x90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가분한 마음 / 오은  (0) 2024.04.30
낙화 / 권지숙  (0) 2024.04.29
불문율 / 한혜영  (0) 2024.04.29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0) 2024.04.29
공연 / 신달자  (0) 202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