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나무 / 강신애
당신은 언제부터 자작나무 숲에 살았나요
제가 부를 때 당신 대답은
자작나무 숲을 돌아나오는 피리소리였나요
당신은 저를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당신 살점은 은잔처럼 눈부시고
그 아래 양귀비꽃들도 아득히 눈감고 머리 숙입니다
저녁이면 자작나무 이파리는, 연기가 뿌옇게 올리오는 숲에
긴 머리칼을 기대고 수음합니다
긴장이 빠져나간 이파리는 꿈을 덮습니다
자작나무를 잠재우고 자작나무 숲을 들어올리는 당신은
자작나무의 정령,
제게 보여주신 수천 길 폭포의 현란한 추락과
비상하는 새떼의 날갯짓은 연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탁발하며 저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 속에는 아직 터지지 않은 씨방이 있어
당신 숲 가까이 씨앗을 날려보냅니다
과거 따윈 갖고 싶지 않은 당신 몰래
내가 낳아 기른 자작나무 한 그루
나는 이제 나의 자작나무에 기대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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