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슈필라움 / 김보람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3. 1. 29. 20:30

슈필라움 / 김보람

 

따라와, 죽고 죽어도, 다시금, 사는 공간
투둑투둑 천장을 때리는 빗줄기, 한없이 길어진 팔이 식물 돌보듯 나를 본다
수축하다 팽창하는 방
밤이면 아름다워지는 혼자
불가능과 불가해의 질문을 더듬는 손길
침수와 잠수의 칸타빌레
반복 그리고 변주
희미하고 막막한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그것이 은유라고 말하지 않았다
뭉툭한
연필 깎으며 히죽히죽 웃는 여자
(시집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시인동네, 2022.)

[시의 눈]
무릇 글쟁이라면 소유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신경숙의 ‘외딴방’, 이 시인의 경우처럼 ‘수축·팽창하는 방’, 곧 집필실이지요. 죽어도 좋을 혼자만의 일터입니다. 언어를 뜨겁게 풀무질하고 망치질하는 제련소이지요. 시의 칼을 벼리는 대장간이 ‘슈필라움’입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다시금’ 죽을 용을 써야 합니다. 이곳엔 ‘불가능과 불가해의 질문’으로 자아를 닦달하지요. ‘침수’에 ‘잠수’를 감행하고 ‘반복’과 ‘변주’를 쫓느라 찐이 다 빠집니다. 헌데 건져올릴 연필촉이 무뎌집니다. 살을 깎아 첨봉을 더 세워야겠지요. 문틈을 오릴 칼바람이 지나갑니다. 그때 히죽 웃음이 연필심에 감겨듭니다. 나 ‘상래문학방’에 면벽가부좌를 틀었습니다. 웃다 찢다 뭐 이틀째지요. 김보람 시인은 김천에서 나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았고,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2017), ‘괜히 그린 얼굴’(2019)을 펴냈습니다. 그는 언어연금술을 보여줄 듯 말듯 신비의 꽃을 피우는 젊은 시인이지요.   (광주매일신문 노창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