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최병우
병원에 한 번 안 가고
주사 한 방 안 맞고
살아 나온 끈기
돌대가리에 두통약만 퍼붓고
칠십 년을 살고 나니
휘청휘청 여섯 자 안팎의
뼈붙이만 남았구나
덜렁한 훈장 하나 그대로 달고
아직 왕성한 식욕 하나로
오뚜기처럼 근들근들 서 있다
녹슬은 빙총 하나 메고
(시집 ‘열 자에 아홉 자의 단칸방’, 문학과경계사, 2002.)
[시의 눈]
‘덜렁한 훈장’과 ‘녹슬은 빙총’이란 유머가 실감납니다. 이제 가진 것이라곤 ‘여섯 자 안팎’의 삭은 ‘뼈붙이’ 가지에 까치밥처럼 달린 그게 다 지요. 이 사람, 누가 묻는 것도 아닌데 짐짓 식욕은 왕성하다고 너스레 떠네요. 많이 먹으면 보대끼면서도요. 병원에도 가지 않을 만큼 과연 건강할까요. 가만, 속셈은 있지요. 거기 가면 좋잖은 소릴 들을까 무서워집니다. 설 명절에 가족들이 그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그들을 달래줄 요량으로 걱정말라며 허세를 부립니다. 그들 또한 그냥 인사로 건넨다는 걸 은근 알지만요. 그는 샤워 때마다 거울에 비친 훈장과 빙총을 닦고 조이며 따로 정성을 다합니다. 딴은 그게 전 재산이니까요. 허, 아직 쓸만하다는 듯 회심의 작태가 부연 거울로 옮겨집니다. 최병우(1921-2004) 시인은 전남 나주에 나 199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늦깎이로 등단해 ‘죽난시사회’ 초기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나주 원로삼인방 박천도, 승지행과 함께한 문인으로 실용식품학의 권위자였습니다. <광주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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