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시의 응시, 소재와 주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음 두 종류의 시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우리의 삶에서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절망하면서 느끼는 아픔과 깨달음, 또는 자연이나 삶의 현장, 그 뒤에 숨어있는 새로운 면을 찾아내어서 그것을 경구적(警句的)이고 고백적(告白的) 형태의 시로 풀어내는 사람이다. 이때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인마다 제각각의 시론을 말하지만 그것을 크게 간추려 보면 "시란 응시(凝視)다"라는 유(類)의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응시란 말 그대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바라본다는 것은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대상에 관심을 갖는 일은 시를 쓰려는 사람의 기본이고 첫 걸음이란 말이 된다. 결국 시란, 응시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초가 결정되고 깊이와 넓이와 맛이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시를 처음 쓰려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시를 아름답게 써야 한다거나 잘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시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주범이다. 물론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귀결되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담백함이 더욱 품위있는 아름다움이다. 마치 순백의 조선 달항아리가 담백하지만 보면 볼수록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담담함 속에 내포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응시, 그것이 시 쓰기 중요한 한 축이요 열쇠다.
두 번째는 주제가 분명해야만 시 전체의 흐름이 명확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순서를 매길 필요가 없는 모든 시에 해당되기도 한 것인데 시의 주제는 시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어서 시인의 인생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주제와 소재를 혼돈하는 현상이 습작을 하는 초보 시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서 '된장국'을 맛있게 요리 하려면 소재인 양념을 잘 해야 하지만 '된장'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나타나는 중심 사상, 즉 주제가 선명하지 않고 소재만 잔뜩 나열하는 경우다. 소재는 시를 시답게 하는 재료이지만 주제는 시의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 같은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내용의 맥이 잡히고 그것을 맛있게 하는 양념인 소재를 잘 활용해야 전체 시의 구성이 단단해진다는 말이다.
오늘은 우리 회원의 시 두 편을 보면서 응시와 소재, 그리고 주제의 선명성 등을 살펴보자.
어떤 회한 / 김영익
조용하던 대숲에
천 가지가 넘는 바람이 분다
황금빛 메스가 검푸르게
곪은 내장들을 집도하려 애쓴다
먹구름도 아팠는지
날이 새도록 구릉구릉 신음을 한다
견딜 수 있는 끝에서
하늘은 참다, 참다 못해
이 산하로 엄청난 눈물을 터트린다
하늘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휘어진 거울인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아파해 본 적 있었는지 아득하다
눈물을 흘려 본 건 더 아득하다
왜 그리 살았을까
냉정한 화석으로 만든 건 무엇일까
가슴 속에 폭우가 쏟아진다
김영익 회원의 시는 고백적이고 경구적인 과정에 놓여 있는데 그동안 밴드에 올라온 그의 시풍은 우리의 나날살이를 조감하는 경구시적(警句詩的) 분위기가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경구시란 원래 보편적 진리나 신랄하고 도덕적인 짧은 시를 담아내는 형태를 말하는 것인데 원뜻은 기념비에 새겨 넣을만한 사람살이를 관조하는 진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에는 연륜이 묻어 있다. 오늘 시도 그렇다. "회한"이라는 관념적 주제에 '천 가지가 넘는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은 '구릉구릉 신음'을 하며 마침내 '엄청난 눈물을 '터트'리고 '가슴 속에 폭우가 쏟아'지는 전개과정이 기승전결(起承轉結)과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작법에 다가서 있다. 그런데 이런 경구적, 고백적 시는 자유롭고 실험적이거나 젊은 시로 한 발씩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박노해 시인의 '때리면 돌아가는 팽이' '돌릴 수록 쥐어짜지는 빨래' '지문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서 느껴진 이데올로기나 80년대 풍의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위 시의 제목인 '어떤 회한'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감성이자 관념적이어서 '새롭게 하기'라는 시의 본류에서 이탈하는 것이 된다. 시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과거의 회상이고 개인적 넋두리인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독자는 그 시를 읽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이 시의 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인데 시의 제목은 본문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도록 주제와 깊고도 넓은 이미지로 맺어지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시를 관류하는 회한과 반성의 고백적 자세는 생명시 운동의 기본 자세와도 맥이 닿아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바람의 길/ 금란
버림과 채움 사이
마음에 바람이 분다
이기심의 바람과
간절함의 바람이 욕구를 부채질하고
절제가 덜 자란 심지는
작은 새의 날개짓에도 흔들린다
어제의 밥을 먹고
오늘의 밥을 돌아보는 순간에도
행운없이 진행되는 인생을
비판하려는 못난 가슴
버팀과 쓰러짐의 자세 사이에서
계속되는 갈대의 사투
긴긴 밤 나열되는 고뇌의 발자국
고뇌한다는 건 몸부림의 바람직한 자세다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가는 삶의 우주선
그 속에서 자아는 가라앉는다
심장을 잃어버린 채
적막한 머리를 껴안고 산다
별빛을 꺼버리고
어둠의 소용돌이에 갇혀
버림과 채움 사이
미련들이 아우성이다
채워지지 않는 아우성
위 시는 금란 회원의 시 중에서는 수작으로 꼽힌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문장을 엮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자아를 찾기위한 하이데거(독일의 철학자, 존재론의 저자)식의 존재(sein)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낯선 존재 탐구의 서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감각은 존재에서 나온 나를 다시 나의 존재로 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가장 나다운 나'를 찾는 '채워지지 않는 아우성'이 시 전체에서 크게 들린다. 그런데 위 시에서는 연가름이 전체적인 맥을 끊어 놓는다든지 자기 배반과 자기부정을 시적 장치로 차용하고 있지만 주제의 불안한 분위기가 오히려 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불안하다는 것은 시를 잘 쓰려는 마음이 앞선 탓일 게다. 좀더 호흡을 가다듬고 내밀화 되고 성숙한 정당성을 지향하는 시 작법으로 밀고 가기를 권해본다. 시는 너무 잘 쓰려다가 망치고 시인으로 빨리 성장하려다가 자기 힘에 겨워서 주저앉는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시는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배우는 것이지만 그것 못지 않게 엉덩이로 배우는 자세도 꼭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일이다.
몇 번을 말했지만 시에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예사로운 말과 표현력을 보여 준다면 시는 특별한 지위를 갖지 못할 것이다. 시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중요 조건은 삶의 다채로움을 새로운 말로 하면서도 공감을 불러내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시짓기의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꾸 시를 써봐야 된다는 사실이다. 어렵다고 피해가거나 아무리 많은 시 창작법을 공부했어도 쓰지않는 사람은 자꾸 써보는 사람에게 당할 수가 없다. 완전하게 하려다가 못하는 사람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자꾸 시를 써보고 수없이 퇴고해나가며 매도 맞아본 사람이 눈만 높은 게으른 시인보다 백 배 낫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 시의 응시, 소재와 주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음 두 종류의 시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우리의 삶에서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절망하면서 느끼는 아픔과 깨달음, 또는 자연이나 삶의 현장, 그 뒤에 숨어있는 새로운 면을 찾아내어서 그것을 경구적(警句的)이고 고백적(告白的) 형태의 시로 풀어내는 사람이다. 이때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인마다 제각각의 시론을 말하지만 그것을 크게 간추려 보면 "시란 응시(凝視)다"라는 유(類)의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응시란 말 그대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바라본다는 것은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대상에 관심을 갖는 일은 시를 쓰려는 사람의 기본이고 첫 걸음이란 말이 된다. 결국 시란, 응시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초가 결정되고 깊이와 넓이와 맛이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시를 처음 쓰려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시를 아름답게 써야 한다거나 잘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시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주범이다. 물론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귀결되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담백함이 더욱 품위있는 아름다움이다. 마치 순백의 조선 달항아리가 담백하지만 보면 볼수록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담담함 속에 내포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응시, 그것이 시 쓰기 중요한 한 축이요 열쇠다.
두 번째는 주제가 분명해야만 시 전체의 흐름이 명확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순서를 매길 필요가 없는 모든 시에 해당되기도 한 것인데 시의 주제는 시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어서 시인의 인생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주제와 소재를 혼돈하는 현상이 습작을 하는 초보 시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서 '된장국'을 맛있게 요리 하려면 소재인 양념을 잘 해야 하지만 '된장'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나타나는 중심 사상, 즉 주제가 선명하지 않고 소재만 잔뜩 나열하는 경우다. 소재는 시를 시답게 하는 재료이지만 주제는 시의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 같은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내용의 맥이 잡히고 그것을 맛있게 하는 양념인 소재를 잘 활용해야 전체 시의 구성이 단단해진다는 말이다.
오늘은 우리 회원의 시 두 편을 보면서 응시와 소재, 그리고 주제의 선명성 등을 살펴보자.
어떤 회한 / 김영익
조용하던 대숲에
천 가지가 넘는 바람이 분다
황금빛 메스가 검푸르게
곪은 내장들을 집도하려 애쓴다
먹구름도 아팠는지
날이 새도록 구릉구릉 신음을 한다
견딜 수 있는 끝에서
하늘은 참다, 참다 못해
이 산하로 엄청난 눈물을 터트린다
하늘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휘어진 거울인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아파해 본 적 있었는지 아득하다
눈물을 흘려 본 건 더 아득하다
왜 그리 살았을까
냉정한 화석으로 만든 건 무엇일까
가슴 속에 폭우가 쏟아진다
김영익 회원의 시는 고백적이고 경구적인 과정에 놓여 있는데 그동안 밴드에 올라온 그의 시풍은 우리의 나날살이를 조감하는 경구시적(警句詩的) 분위기가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경구시란 원래 보편적 진리나 신랄하고 도덕적인 짧은 시를 담아내는 형태를 말하는 것인데 원뜻은 기념비에 새겨 넣을만한 사람살이를 관조하는 진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에는 연륜이 묻어 있다. 오늘 시도 그렇다. "회한"이라는 관념적 주제에 '천 가지가 넘는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은 '구릉구릉 신음'을 하며 마침내 '엄청난 눈물을 '터트'리고 '가슴 속에 폭우가 쏟아'지는 전개과정이 기승전결(起承轉結)과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작법에 다가서 있다. 그런데 이런 경구적, 고백적 시는 자유롭고 실험적이거나 젊은 시로 한 발씩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박노해 시인의 '때리면 돌아가는 팽이' '돌릴 수록 쥐어짜지는 빨래' '지문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서 느껴진 이데올로기나 80년대 풍의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위 시의 제목인 '어떤 회한'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감성이자 관념적이어서 '새롭게 하기'라는 시의 본류에서 이탈하는 것이 된다. 시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과거의 회상이고 개인적 넋두리인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독자는 그 시를 읽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이 시의 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인데 시의 제목은 본문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도록 주제와 깊고도 넓은 이미지로 맺어지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시를 관류하는 회한과 반성의 고백적 자세는 생명시 운동의 기본 자세와도 맥이 닿아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바람의 길/ 금란
버림과 채움 사이
마음에 바람이 분다
이기심의 바람과
간절함의 바람이 욕구를 부채질하고
절제가 덜 자란 심지는
작은 새의 날개짓에도 흔들린다
어제의 밥을 먹고
오늘의 밥을 돌아보는 순간에도
행운없이 진행되는 인생을
비판하려는 못난 가슴
버팀과 쓰러짐의 자세 사이에서
계속되는 갈대의 사투
긴긴 밤 나열되는 고뇌의 발자국
고뇌한다는 건 몸부림의 바람직한 자세다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가는 삶의 우주선
그 속에서 자아는 가라앉는다
심장을 잃어버린 채
적막한 머리를 껴안고 산다
별빛을 꺼버리고
어둠의 소용돌이에 갇혀
버림과 채움 사이
미련들이 아우성이다
채워지지 않는 아우성
위 시는 금란 회원의 시 중에서는 수작으로 꼽힌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문장을 엮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자아를 찾기위한 하이데거(독일의 철학자, 존재론의 저자)식의 존재(sein)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낯선 존재 탐구의 서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감각은 존재에서 나온 나를 다시 나의 존재로 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가장 나다운 나'를 찾는 '채워지지 않는 아우성'이 시 전체에서 크게 들린다. 그런데 위 시에서는 연가름이 전체적인 맥을 끊어 놓는다든지 자기 배반과 자기부정을 시적 장치로 차용하고 있지만 주제의 불안한 분위기가 오히려 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불안하다는 것은 시를 잘 쓰려는 마음이 앞선 탓일 게다. 좀더 호흡을 가다듬고 내밀화 되고 성숙한 정당성을 지향하는 시 작법으로 밀고 가기를 권해본다. 시는 너무 잘 쓰려다가 망치고 시인으로 빨리 성장하려다가 자기 힘에 겨워서 주저앉는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시는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배우는 것이지만 그것 못지 않게 엉덩이로 배우는 자세도 꼭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일이다.
몇 번을 말했지만 시에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예사로운 말과 표현력을 보여 준다면 시는 특별한 지위를 갖지 못할 것이다. 시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중요 조건은 삶의 다채로움을 새로운 말로 하면서도 공감을 불러내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시짓기의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꾸 시를 써봐야 된다는 사실이다. 어렵다고 피해가거나 아무리 많은 시 창작법을 공부했어도 쓰지않는 사람은 자꾸 써보는 사람에게 당할 수가 없다. 완전하게 하려다가 못하는 사람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자꾸 시를 써보고 수없이 퇴고해나가며 매도 맞아본 사람이 눈만 높은 게으른 시인보다 백 배 낫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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