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된 시란?
시사모 회원들 중에는 시를 좋아하거나 시를 쓰고는 있지만 체계적으로 시 공부를 하지 못하여 목말라했던 사람이 많다. 등단을 한 사람이나 못 한 사람이나 시를 이해하거나 쓰는 수준이 제각각이다. 나는 강의의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 고심을 하다가 그동안 기초적인 시 작법과 시인의 자세에 관한 것, 가끔은 심화과정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어려운 개념도 쉽게 풀이하여 소개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강의가 어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강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거나 펨훼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았다. 수준을 높이자니 중간에 회원이 된 사람들의 질문에 기초적인 것을 다시 언급해야 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그동안 가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등단 시인들의 가입도 이어졌고 속성으로 시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지도요청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개인적 지도를 할만한 시간과 능력이 되지 않아서 정중히 거절하는데도 가끔은 섭섭함을 직간접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고민을 하다가 내 나름의 시 짓기의 몇 가지 방법을 다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평소에 알고 지내는 평론가는 "오랜 시간동안 연마해야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노하우를 그냥 공개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반농으로 질책도 했다. 하지만 나를 믿고 따라와 준 회원들께 보답하는 의미로 행여 관심있는 사람의 시짓기에 도움이 된다면 나로서는 보람으로 생각하겠다.
● 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시를 잡는 형상(틀)을 "운율"이라고 하고 시의 존재를 그 형상(틀)에 담는 것을 "비유"라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가지만 잘 하면 시의 90%는 완성된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공부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핵심적 내용만 언급한다.
문자나 종이가 없었을 때 시는 노래의 가사였다. 말을 기록하거나 전달하는 방법으로 노래가 이용되었고 노래가 되기 위해서는 시는 정형화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노래는 정형시이고 운율이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시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인쇄술이 개발되어 책이 나오면서 시가 기록성이나 전달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 위치를 "책"이 담당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가 외재율(겉으로 드러나는 일정한 음격音格에 의하여 생기는 운율)을 지킬 필요도 자연스레 줄어들고 표현이 다체로운 자유시가 나오게 되었는데, 1855년 윌터 휘트먼(Walt Whitman/미국의 시인, 1819~1942)의 시집 '풀잎(Leaves of Grass)'의 출간을 통해 자유시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양의 인쇄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일반 국민들의 생활속에 책이 빠르게 보급되었고 노래로 전하던 시는 외재율이라는 틀 속에 얽매일 필요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자유시의 부흥기를 맞은 것이다. 서양인쇄술의 발달을 타고 시를 비롯한 서양문화의 부흥은 폭발적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서양의 그것보다 훨씬 앞섰지만 10만자(拾萬字)도 더 되는 한문의 문자적 구조로 인하여 책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고 양반으로 통칭되는 귀족문화의 향유에 그친 점이다. 그러는 사이 영어는 100자 정도의 글자로 책을 다 만들 수 있었지만 한문은 제쳐놓고 세계적인 문자라는 우리의 한글은 보편화 된 이후에도 1,000자를 동원해도 내용을 다 표현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한글의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이 완전한 책을 만들기가 힘들었다. 서양은 책 발간의 부흥기를 이루었지만 책의 보급이 늦은 동양은 앞서가던 동양의 시, 특히 우리의 시는 서양의 자유시에 뒤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세계적인 명시로 회자되는 시의 대부분은 서양시가 중심에 놓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국어학자들조차 띄어쓰기나 맞춤법, 부호를 정확하게 다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자조적인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한글이 복잡하다. 문자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시인들의 시집(詩集)에도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100% 정확한 책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은 세종대왕께서 소리글자로 만든 한글을 점점 어렵게 만든 국어학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말이 나온김에 KBS TV의 ‘우리말 겨루기’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글은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일조하는 프로그램이다. 국어선생들도 알아 맞추기 어려운 한글이라면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글을 간단하고 쉽게 하는 방법을 연구 해야 한다. 나는 시를 쓸때도 어려운 말을 쓰지 말자는 입장이다.
자유시에 있어서는 내재율(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은 형태로 들어있는 운율)이 없다. 자유로운 외재율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의 호흡은 인간의 호흡과 같은 것이므로 호흡을 등한시 하는 시는 시의 사지를 절단하는 것과 같다. 호흡이란 바로 운율이다. 그러나 편협한 운율은 버려야 한다는 정과리 시인의 말처럼 리듬의 흐름을 잘 이해하여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은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우리 시사모에 올라오는 시를 보면 시적으로 좋은 재료가 많다. 그러나 궁중요리를 할만큼 훌륭한 식재료를 여기저기에서 어렵게 구했어도 요리를 하지않고 설명하는데 그쳐버린 시가 너무 많다. 자세히 보라. 제목을 A라 써 놓고 그 A를 열심히 설명하는데 내용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시의 제목에 얽매여서 시의 내용이 제목과 연관되는 온갖 좋은 재료를 소개만 하고 정작 요리를 하지 않는다. A는 B인 것을 뛰어 넘어서 C가 되게 하는 것이 현대 자유시의 기본 요리법이다. 해물탕의 재료가 아무리 싱싱하고 좋다고 할지라도 요리하지 않으면 해물탕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요리되지 않은 시는 <시 이전의 시>인 것이다. 시가 묘사에 그치면 요리되지 않은 재료 설명에 불과하다. 선택된 낱말들을 문법에 따라 조합하고 배열해 놓은 것은 시가 아닐 가능성, 즉 산문에 가깝게 되거나 시 이전의 시라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떠야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요리를 할까?
요리의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암시적인 연상, 즉 은유(隱喩)와 환유(換喩)이다. 은유는 한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라면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 있는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제대로 알고 시를 쓴다면 현대시의 작법을 거의 익혔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처음 시를 쓸 때는 은유와 직유를 많이 쓴다. 은유는 '진술'이지만 직유는 '묘사'인데 은유와 직유만으로는 시가 온전하게 되기는 힘들다. 환유를 넣을 수 있도록 연습하라. 수령이 5백 년도 더 된 매화나무를 대상으로 시를 쓴다고 치자. 우리는 그 매화나무 이름을 제목으로 붙여놓고 어떻게 하면 그 매화를 잘 묘사하고 진술할 것인가에 힘을 쏟는다. 그러나 시로써 완성도를 갖기 위해서는 매화나무에 숨겨진 그늘까지를 입체적으로 이야기 해야 한다. 산문은 평면적 진술이고 시는 입체성을 띤 결합 구조인데 그 결합 속에 나만의 경험이나 사상, 색깔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와 환유의 입체적 결합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것은 '비유'이고 인접성을 지닌 것이 '환유'인데 이것을 입체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면 "시 이전의 시"가 되기 십상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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