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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의 현장, 이주의 시> 제33강

귀촌일기 박뫼사랑 2017. 12. 25. 11:02

  - 밴드장 토요 강좌 -

<시창작의 현장, 이주의 시> 제33강

   언어의 친숙화와 낯설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파도의 속삭임에 익숙해져서 그 소리에 감동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도 우리들이 말하는 언어가,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것일 때는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낯익은 사람끼리는 서로 바라보지만(look) 서로를 주의깊게 쳐다보지(see)않는다." 이 말은 유명한 형식주의자이면서 시의 문학성(文學性/literariness)을 낯설은 이미지의 구조로 보는 그 유명한 '낯설게 만들기'의 주창자인 러시아의 쉬클로프스키(V. Shklovski)의 말이다. 그는 언어의 친숙화야말로 가장 비시적(非詩的)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친숙화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반복되어 습관화 되었을 때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각(知覺)은 자동화되고 감각(感覺)은 마비되어 낯익은 사람 사이에는 언어를 생략하고 손짓이나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탈언어화 상태가 된다.
   나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 마다 낯설은 언어는 시를 시답게 하는 지름길이고, 반면 친숙한 것들은 시를 맛 없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지루하리만치 강조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 밴드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아직도 이 기초적인 시작법을 이해하거나 익히지 못한 것인지 그리움타령, 사랑타령, 꽃타령 등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을 시어의 중심에 놓아서 시에 맹물을 부은 것 같은 싱거운 글을 많이 보았다.
   시인이 대항해서 투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친숙함과 일상의 습관과 싸워서 이기는 일이다. 상투적 표현과 습관적 문맥의 차용에 치명적 일격(致命的 一擊/coup degree)을 가해서 감각적인 새로운 결(texture)을 만드는 작업이 '시짓기'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의 언어는 낯익음의 용법에서 벗어난 낯선 용법, 즉 난해성을 창조하여 지각(知覺)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짓기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대로 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고,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지각을 어렵게 하여 지각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심미안(審美眼)의 작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와 같은 언어의 용법은 무카로프스키(J. Mukarovsky)에 의해 체계화된 전경화(前景化/foregrounding)로 설명되기도 한다. 전경화란 탈선(脫線/deviation) 즉 규칙과 인습에 대한 위반이라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탈선에 의해 언어가 지니는 일상적인 의사전달 기능을 초월하고 독자를 각성시켜 상투적인 표현의 관습에서 이탈시킴으로써 새로운 지각작용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즉 일상적인 언어들을 배경화(背景化/back grounding)하고 낯선 시어들을 전면에 제시하는 전경화의 시 작법이다.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에서

   위 시는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용법을 벗어난 시어인데 '꽃처럼 붉은 울음'에서 꽃의 이미자질은 식물, 시각, 기쁨 등으로 분석된다. 반면 '울음'의 이미자질을 꽃과 대조해 보면 울음의 주체가 전혀 동질성이 없는 상호모순의 변별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꽃'과 '울음' 사이에는 유사성의 자질이 배제되어 그만큼 일탈성이나 낯설음의 충격이 크게 작용 함으로써 새로운 지각작용, 즉 낯설음의 언어가 시를 새롭게 하고 감각적인 것이 되게한 것이다.

   
<이주의 회원 시>


부화   /이상욱

양수와 어둠의 공간
여린 숨결 스며든다

몸 말아 웅크린지 스물 남짓 날
적막 말라버린 양수 대신하고
여느 날과 다른 태동
어둠 맞선다

고동치는 심장
안과 밖 경계 뒤흔드는 격정
부리 끝 힘을 모은다
파편이 튄다
흔들리던 적막 깨어나고
무너지는 경계
천정 쏟아진다

하늘 열리다

첫 숨 토하는 날갯짓
서막 열리니
아비도 없이 가을을 낳는다




그렇게 가을은 / 김경호



첫 서리 내리던 날
병원차가 달려가던 큰 길모퉁이까지
아버지 떠나가신 자욱이 선명했다
 
버리지 못한 삶의 찌꺼기는
결국 머릿속 혈관을 서릿발처럼 하얗게
덮어 버렸다

얼굴은 허옇게 질려있었고
다물지 못한 입에선
소리 없는 통곡이
회한의 눈물이 되어 흘렀다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은 없었다

무서운 가을이었다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었다
가을 같지 않은 가을이었다

열 살 난 아이의
몹시 추운 가을의 시작이었다



산 그림자 / 최 홍 식


이른 아침
산으로 간다

바람은 파도타기 하듯
높낮이를 즐기며
산 허리를 넘나든다


고단함도 잊고
삶의 향기를 묻히던 우거진 숲
나무가 친구가 되고 단풍잎이
벗이 되어주는 그 곳

당신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흙냄새 바람 냄새
흔들리는 잎새 까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가슴속 메아리 되어
또다시 산속으로 스며드는
그 이름



노을 / 김도형


마른 담쟁이 걷어내고 이제
새 옷 입히자는 성화에 아버지
두 팔 가득 상자 하나 안고 오신다

창고에 갇혀있다 이제야 빛을 본
은퇴하던 아버지 손에 들렸던 그 속엔
혼자 될 마누라를 위해 마련한 생계와
새끼들한테 주지 않으려 남긴 부담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뒹굴고 있다

하나의 씨앗이 열매 맺고 낙엽으로 지기까지
앙상한 가지로 외로이 버틴 그 질긴 겨울
싸움을 함께 한 오롯이 남은 자존심이
자잘한 것들 사이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상자 하나에 담기엔 너무도 긴 여정
미처 채우지 못한 기억을 내 어린 시절부터
집안 곳곳에 뿌리처럼 뻗어 넣어둔 그 모습
새 칠 아래 지워버리기가 그리도 싫으셨나보다

갈라터진 손바닥 같이 더 이상
온기 품을 수 없는 방바닥 조각난 그 많은
주름들에 거미줄로 엉겨 새겨진 그 기억
자식들의 손으로 묻어 버리긴 아까우셨나보다

은행나무 아래 물드는
상자처럼 우두커니 선 집 방바닥 가득
낙엽 부어놓고 홀가분한 어깨로 문 나서는
아버지 뒤로 깊은 가을이 내려앉는다



※  이번 주에는 이상옥 님의 '부화', 김경호님의 '그렇게 가을은', 최홍식 님의 '산 그림자', 김도형 님의 '노을'을 골랐습니다. 전부 '아버지와 가을'의 이미지 시 들을 뽑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위 시 들의 잘 된 부분과 퇴고해야할 부분을 지적하여 비평을 하여 올려 주시면 그 중에서 제일 우수한 평을 하신분을 선정하여 7만원 상당의 상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이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