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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만 한 작은 해 1 / 바오긴 락그와수렌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3. 9. 06:18

손톱만 한 작은 해 1 / 바오긴 락그와수렌

 

할아버지 가슴에서 홑겹의 게르 안에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웅얼웅얼 소리가 난다. 손톱만 한 작은 해가 천창 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약해진 심장 멀리에서 소리가 난다.

“말을 찾았느냐? 말의 콧소리를 듣고 싶구나…”라고 하신 몇 마디 말에 목이 막히시는 듯 말이 없으셨다.

다행히 말 묶는 곳에서 등자 소리가 나고, 말이 낮은 소리로 히이잉― 울었다. 할아버지는 천창을 덮은 덮개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웃으시며,

“큰애가 왔니? 말을 찾았느냐?”라고 하시는 말씀이 좀 전보다 더 또렷이 들렸다. 나는 나가 보지도 않은 채…

“네, 형이 왔어요. 말을 찾았어요….”

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할아버지께서 “아, 다행이구나” 하시며 깊은 숨을 내쉬시다 멈추셨다. 읍의 의사가 들어오자마자 오른쪽 문가에서 흰 가운을 입고 나갔다… 손톱만 한 작은 해가 천창 틀에서 날아갔다.

- 바오긴 락그와수렌(1944~2019)


락그와수렌은 서사시의 구비적 전통을 이으면서도 몽골의 생활·풍속을 현대적 감각으로 그려낸 시인이다. 시집 <한 줄도 나는 베끼지 않았다>에는 유목민의 삶과 죽음이 마두금 선율처럼 울려 퍼진다.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를 들려주는 이 산문시에서도 장엄한 평화가 느껴진다. ‘손톱만 한 작은 해’는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의 불씨를 상징한다. 해가 게르의 천창 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은 말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목민에게 말은 가족 같은 삶의 동반자, 영혼의 안내자라는 걸 알 수 있다. 말을 찾으러 간 큰손자를 기다리며 할아버지는 몇번이고 “말을 찾았느냐?”고 묻는다. 손자는 밖에 나가보지도 않고 “네, 형이 왔어요. 말을 찾았어요”라고 대답한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편안히 숨을 거둔다. ‘손톱만 한 작은 해’도 천창 너머로 날아간다. “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는 구절을 보면, 등자 소리와 말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말을 찾았다고 답한 것은 할아버지 영혼을 돕기 위한 손자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늘과 대지로 돌아간 할아버지, 그날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 더 늘었으리라.

 [경향신문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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