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하나 / 도종환
저녁 먹고 양말을 벗는데
귀뚜라미 다리 하나가 툭 떨어진다
마당 풀 뽑고 텃밭 오르내리는 동안
어디서 귀뚜라미는 내 발에 차였을까
다리 하나를 잃은 귀뚜라미는
어느 풀섶에 기대
저녁 내내 아파했을까
세상 울음에 귀 기울이는 척하던 내 귀는
풀잎의 허리를 잡고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느 풀잎 아래로 내려가야
이 다리를 돌려줄 수 있을까
손가락에 쥐고 있는
망연한 다리 하나
도종환(1954~)
귀뚜라미 다리 하나가 툭 떨어진다
마당 풀 뽑고 텃밭 오르내리는 동안
어디서 귀뚜라미는 내 발에 차였을까
다리 하나를 잃은 귀뚜라미는
어느 풀섶에 기대
저녁 내내 아파했을까
세상 울음에 귀 기울이는 척하던 내 귀는
풀잎의 허리를 잡고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느 풀잎 아래로 내려가야
이 다리를 돌려줄 수 있을까
손가락에 쥐고 있는
망연한 다리 하나
도종환(1954~)
불과 진흙 구덩이 같았던 정치의 시간을 지나 소소한 일상의 자리로 돌아온 시인은 마당의 풀을 뽑고 텃밭을 가꾸며, 고요 쪽으로 더 깊게 들어간다. 고요가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지, 고요 속의 빛을 따라가는 일이 얼마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일인지, 또 고요 속에 발자국을 넣으면 얼마나 자신이 작은 존재였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작아지는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어느 저녁, 시인의 양말에서 “귀뚜라미 다리 하나”가 떨어진다. “풀잎의 허리를 잡고 우는 귀뚜라미”를 떠올리는 순간, 시인의 마음에 금이 간다. 그제야 시인은 “풀잎”으로부터 너무 멀리 갔다가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 풀잎 아래에는 어린 귀뚜라미들이 몸을 웅크린 채 다리를 조금씩 펴고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 ‘다리’는 몸의 일부만이 아니다. 갈라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우리가 함께 건너갈 ‘다리’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경향신문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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