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병 / 조기호
엄마가
꽃을 따다
병에 꽂았다
꽃병이 되었다
방 안이 환해졌다
아빠가
술을 따라
병에 담았다
술병이 되었다
아빠 얼굴이 환해졌다
(동시집 ‘재미있는 병’, 초록달팽이, 2024)
[시의 눈]
동심의 빛깔은 다양하기 그지없어 동심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얼추 손으로 꼽을 만한 두드러진 동심 특성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낭만성과 포근한 인간성, 순수의 숨결이 만들어낸 원시성과 정직성이 그것이다. ‘재미있는 병’은 정직성이 시선을 끄는 동시다. 호수에 비치는 풍경처럼 마음에 투영된 세계를 솔직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엄마는 병에 꽃을 꽂는다. 꽃병이 된다. 아빠는 병에 술을 따라놓는다. 술병이 된다. 동심의 정직성은 어른들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질서와는 또 다른 동심 특유의 창조된 질서이다. 이 내적 질서를 스스럼없이 작동시키는데 자동화돼 있다. 정신은 흔들림이 없다. 외부의 방해를 거부한다. 숨길 수 없는 절대가치이기 때문이다. 정신은 밖으로 드러나게 돼 있다. 권태응의 ‘감자꽃’이 그 가치를 증거해 보여준 바 있다. 순수 정신은 감출 수 없는 법이라는 것을. 동심의 주체는 자신이 정직한 것처럼 대상들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믿고 있다. 표정, 말, 행동에 깊숙한 정신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꽃이 밖으로 드러난 외모라면 감자알은 내면의 정신이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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