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가을의 역설 / 김성옥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10. 27. 05:55

가을의 역설 / 김성옥

 

예전에는
너에게로 가는 길이
급하고 어지러웠으나
이제 나는
더디게 갈 수 있고
또한 편하게 갈 수 있다.
낙엽마저 다 떨쳐버리고
흔들려 쓰러지지 않는
덩치 큰 나뭇등걸로 남아
하늘을 향해
몸 하나로 버틸
아름다운 가난이 있으니
비워서 가볍게
너에게로 간다.
- 김성옥 '사람의 가을'

단풍이란 말은 들뜨고, 낙엽이란 말은 가라앉는다. 존재했던 겉껍질이 부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쓸쓸함이 살갗에 사무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을은 사라짐이 아니라 깊어짐의 계절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번뇌와 욕망의 겉옷을 벗고 본질만 남은 '참 나'로 되돌아가는 계절. 그렇다. 열반도 구원도 비움에서 온다. 오온(五蘊)을 붙잡지 않아야 해탈에 가닿고,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만 천국은 열린다. 사슬을 버려야 도달하는 자리가 있다. 가을은 역설의 계절이다.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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