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주먹의 기억 / 정종목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9. 15. 05:44

주먹의 기억 / 정종목

 

무엇을 쥐고 있을까 잠든 아기는
손가락 말아쥐고 잠든 아기는
이제 막 도착한 세상에 대해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깨어서 울음밖에는 웃음밖에는 모르는
최초의 언어를 향해 걸음마도 떼어놓지 못한 아기는
무엇을 움켜쥐고 잠들었을까, 잠들었을까
손가락 하나하나 헤쳐보면 아무것도 없고 보이지 않고
어김없이 다시 감겨져
향기로만 오고
부드러운 감촉으로만 오고
좀처럼 선뜻 보이지 않는
완강하게 세상을 향해 말아쥐고 있는
잠든 아기의 주먹, 작은 주먹 속에는
- 정종목 '작은 주먹' 부분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잃지 않으려는 듯 뭔가를 단단히 움켜쥔 채 잠든 아기의 작은 손. 이제 막 도착한 세상에서, 아기의 작은 주먹은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차 있다. 공허한 주먹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역설이 저 조막손 하나에 담긴 것이다. 그렇다. 존재의 시작이란 바로 이 '텅 빔 속의 충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기 때의 기억을 모두 잊고 살아간다. 내 것이 아니었던 많은 것을 쥐었는데도 더 내 것으로 소유하지 못했음에 아쉬워한다. 빈손으로, 주머니도 없는 옷을 입고 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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