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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기상 / 조광윤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9. 5. 09:00

제왕의 기상 / 조광윤

 

 

막 솟는 붉은 태양 찬란하게 빛나니,

첩첩한 산봉우리 불꽃처럼 타오른다.
둥근 해 순식간에 하늘길 오르니,

뭇별들과 희미한 새벽달은 쫓기듯 물러나누나.
(太陽初出光赫赫, 千山萬山如火發. 一輪頃刻上天衢, 逐退群星與殘月.)
―‘갓 떠오르는 태양(영초일·詠初日)’ 조광윤(趙匡胤·927∼976)


조광윤은 혼란과 분열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를 마감하고 송나라를 건국한 제왕이다. 시에는 창업 군주의 웅혼한 기상과 포부가 응축돼 있다. 첩첩이 둘러선 산을 불태우기라도 하듯 찬란한 태양이 위용을 드러내자, 뭇별과 새벽달은 속절없이 스러진다. ‘순식간에 하늘길을 오르는’ 기세, 그것은 바로 당시 난립했던 군웅(群雄)들을 일거에 평정하고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다짐이다. 욱일승천(旭日昇天)은 단순한 자연 현상의 묘사를 넘어 자신의 통치가 시대적 대세이자 필연성임을 표상한다. 어떤 의미에서 제왕의 시는 감상(鑑賞)의 영역 이상으로 권력자의 기상과 정치적 자의식을 드러내는 텍스트로 역할을 한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나 초 패왕(霸王) 항우(項羽)의 노래 역시 이런 범주에 든다. 유방은 ‘큰 바람 불어 구름 흩날리니, 위엄이 천하에 더해져 고향으로 돌아왔네. 어찌하면 용맹한 장사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꼬(대풍가)’라 읊었다. 천하를 제패한 승자의 당당함과 함께 이를 지키려는 정치적 긴장감을 절묘하게 교차시켰다. 항우는 패망 직전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건만, 때가 불리하니 말조차 나아가지 않는구나(해하가·垓下歌)’라며 비통해했지만, 몰락의 순간까지도 군웅다운 자존과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동아일보 이준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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