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의 시간

봄 / 이동주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4. 8. 13:08

/ 이동주

 

계집에는 이름이 없대요

나이도 모른대요

저런 박살할년...

강아지와 나란히 부엌에 앉아

썩 비벼 맵게 먹고

빨간 오리발 손에

얼음이 박혔대요

올해 몇이지? ”

어쩌다 나이를 물의면

살랑살랑 능금빛 얼굴을

두 쪽으로 쩍 벌려

하얗게 돌아선대요

 

이동주의 「봄」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내용은 봄의 전형적인 이미지—꽃, 햇살, 따스함—보다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강한 인상을 줍니다. 감정과 상징이 응축된 짧은 시인데, 몇 가지 특징과 해석을 나눠볼게요.


 시의 해석과 감상

1. "계집에는 이름이 없대요 / 나이도 모른대요"

  • 여기서 ‘계집’은 다소 거칠고 낡은 표현으로, 여성을 낮춰 부르는 말입니다.
  • 이름도 나이도 없다는 건 존재가 불분명하거나 사회적으로 규정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요.

2. "저런 박살할년..."

  • 강한 욕설조의 표현이지만, 화자의 감정이 복합적입니다.
  • 연민, 분노, 체념, 혹은 자조적 감정이 섞여 있을 수 있어요.

3. "강아지와 나란히 부엌에 앉아 / 썩 비벼 맵게 먹고"

  • 삶의 궁핍함이나 소박함이 묘사되고 있어요.
  • 인간과 동물이 별다름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현실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4. "빨간 오리발 손에 / 얼음이 박혔대요"

  • ‘오리발’은 실제로는 수영용 도구지만 여기선 손 모양을 빗대어 표현한 듯합니다.
  • 손이 얼음처럼 차갑거나 얼어붙은 걸 표현하는 동시에, 생활고나 감정의 차가움을 나타냅니다.

5. "살랑살랑 능금빛 얼굴을 / 두 쪽으로 쩍 벌려 / 하얗게 돌아선대요"

  • 봄의 이미지가 드디어 등장하지만, ‘능금빛’과 ‘하얗게 돌아선다’는 표현이 묘하게 이질적이에요.
  • 얼굴은 따뜻한 색인데, 돌아서는 모습은 차갑고 멀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 질문에 대해 말없이 ‘하얗게 돌아서는’ 반응은,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과거나 상처, 또는 ‘나이’와 ‘이름’이라는 사회적 규정에서 도망치고 싶은 욕망일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시는 어떤 여성의 처연한 삶을 봄이라는 계절의 대비 속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화자의 말투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는 매우 섬세하고 따뜻합니다.
‘봄’은 외면적으로는 따뜻하지만, 이 여성에게는 차가운 계절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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