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이 상제 살지게 먹여 / 최영
녹이 상제 살지게 먹여 시내 물에 씻어 타고
용천(龍泉) 설악(雪鍔) 들게 갈아 다시 빼어 둘러메고
장부의 위국 충절을 적셔 볼까 하노라
-병와가곡집
아, 붉은 무덤
고려말의 무장 최영이 남긴 시조다. 녹이는 날래고 좋은 말이며, 상제는 굽에 흰털이 있는 명마다. 용천은 보검의 대명사이며, 설악은 날카로운 칼이다. 준마들을 살지게 먹여 시냇물에 씻어 타고, 보검을 잘 들게 갈아 다시 빼어 둘러메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최영은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고, 삼남 지방을 휩쓸던 왜구를 대파해 나라를 지킨 명장이었다. 중국대륙이 원·명 교체기에 들자 그는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할 기회라고 여겼다. 직접 지휘하고자 했으나 왕의 만류로 이성계와 조민수에게 군사를 맡긴 것이 실책이었다. 압록강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체포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장군의 비극이요, 만주를 영원히 포기하게된 우리 민족의 비극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내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까? 한을 품고 죽은 그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았으며, 오늘까지 무속에서는 그를 신으로 받들고 있다.
[유자효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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