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의 하룻밤 / 이광석
겹겹 쌓인 낙엽이불을 덮고
겨울잠을 청하는 산사 고찰
공양시간 놓친 겨울바람 뒤축
대웅전 뜨락 전나무 가지를 흔든다
이른 새벽부터 떨며 반짝이던
건넛산 외딴 별 하나
처마 끝 풍경소리에 얼굴을 묻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를 그리워할
자유가 있다 따뜻한 잠과 쓸쓸한 추위를 넘어
한 끼의 더운 밥상 기다리듯 너에게 가고 싶다
어느새 한 치쯤 웃자란 폭설의 벽을 밀고
이제 나는 간다 먼 마을 여린 등불처럼
낮게 흐느끼는 너를 향해 시린 항해의
닻을 올린다
(시집 ‘바람의 기억’, 경남, 2020)
[시의 눈]
을사년 새해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슬픈 일로 지난 한 해를 돌아보기도 힘이 듭니다. 마음을 가라앉힐까, 눈 쌓인 산사를 찾지요. 벅차게 오르는 일출에 소망을 겁니다. 그래 한동안 잊었던 ‘국태민안’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온갖 사고 굉음이 우리 뒤축을 망가뜨리지만, 관념적인 이 말로나마 기원하기를 거듭합니다. 무안의 청천벽력같은 참사는 수많은 가족들의 소박한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새해 아침, 한 끼 더운 떡국을 차립니다. 손자의 선물을 안고 숨진 할아버지의 뜻을 거기 담아드립니다. 산마을 울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높아질수록 낮게 흐느끼며 낡은 닻을 고쳐 올리고 새출발의 제를 다시 올립니다. 이광석 시인은 경남 의령에서 나 1959년 ‘현대문학’ 천료로 등단했고, 시집 ‘겨울나무들’(1974), ‘잡초가 어찌 낫을 두려워하랴’(1996)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삶을 어지럽히는 잡동사니들을 내려 놓고 한 탁발승이 돼 목탁소리를 빌어 침묵의 언어를 말하듯 하는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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