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 이대흠
자유에 대해 말한다면 손톱만큼 치열한 경우도 없다 나에게 처음으로 죽음을 가르쳐준 그것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뱃머리 같은 곳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배의 행방을 알 수 없듯 나는 잘려나간 손톱이 간 곳을 모른다
한때는 호미날이 되어 풀을 매고 아이의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기도 하였다 항상 몸통보다 먼저 가서 더러움과 치욕을 견디고 꽃의 속 그 깊은 곳의 부드러움과 뜨거움을 내게 알려주었던 전위의 촉수
붉은 피가 흐르는 펜촉을 나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몇번이고 바위를 찧는 독수리의 부리처럼 깨어지고 잘리어도 다시 돋는 신생의 힘
뿌리를 벗어나려 한번도 쉬지 않았던 그가 달을 품고 있었으니 그에게도 다만 저를 견디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어
손톱은 날고 싶었다 손톱이었던 기억을 잊고 훨훨 꽃잎처럼 날아서 어딘가로 가려 한 것이다 깍여 떨어지는 짧은 죽음의 순간에야 날개를 얻는 새
[이대흠 '코끼리가 쏟아진다'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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