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이변 / 김승재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12. 2. 06:41

이변 / 김승재

 

플립 디럭스 유모차 차양막 그늘 밑에
삼대독자 대 끊긴 자리 유기견이 앉아 있다
꿈같은
아이 울음이
눈에 밟혀 아프다
(시조집 ‘가사도와 진섬 사이’, 고요아침, 2024)

[시의 눈]
점심 후 잠깐 나 산책길에 나왔습니다. 서릿발이 치기 전에 벌써 거두어간 한 고구마밭 옆길이지요. 그 길 지나면 평탄한 우레탄 길로 접어듭니다. 아, 오늘도 흰모자 할머니가 미는 디럭스급 유모차가 보입니다. 거기 실린 강아지도 있군요. 참 호강도 하는구나 생각합니다. 뭐, 가관이라면 주인에게 좀소릴 들을 법도 하지요. 한데, 삼대독자를 마지막 태운 유모차라니, 그 끊긴 데에 유기견이라도 싣는 지극 정이 전해지는 듯 싶습니다. 암팡진 궁둥이를 깔고 기웃거리는 저 반려견은 그걸 다 알까요. 할머니의 슬픈 타령따라 들려오다 잦아진 울음이 견공의 눈에도 생생하게 이는 듯합니다. 끄응! 반려견은 할머니를 애잔히 건너보다 보료 위에 눕습니다. 먼 하늘 틈으로 밟히는 주인의 눈물은 견공 말고는 누구도 모를 겝니다. 손주의 손바닥 같은 단풍잎에 비친 햇살이 그걸 일러나 주듯 붉게 파고드는군요.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마치 손주를 타이르듯 할머니는 강아지와 눈을 맞추며 애써 눈물을 잊으려 합니다.

 김승재 시인은 전남 진도에서 나, 2013년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2017년 중앙시조백일장 월말 장원을 했습니다. 시조집 ‘돌에서 길을 보다’(2014), ‘허수아비’(2018), ‘대왕암’(2020)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잔치 끝에 혼자 남은 대상의 오롯함과 신산함을 노래하며, 수석연구가다운 응축과 무늬를 시에 유연하게 그리는 돌의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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