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니가 좋으면 / 김해자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3. 4. 4. 09:53

니가 좋으면 / 김해자

 

가끔 찾아와 물들이는 말이 있다

두레박 만난 우물처럼 빙그레 퍼져나가는 말

전생만큼이나 아득한 옛날 푸룬 이파리 위에

붉은 돌 찧어 뿌리고 토끼 풀꽃 몇 송이 얹어

머스마가 공손히 차려준 손바닥만 한 돌 밥상 앞에서

이뻐, 맛있어, 좋아,

안 먹고도 냠냠 먹던 소꼽장난처럼

덜 자란 풀꽃 붉게 물들이던 말

덩달아 사금파리도 반짝 빛나게 하던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말한 게 다인 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붉은 돌에 오소록 새겨진

 <김혜자 '집에 가자' 삶창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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