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벌레 / 최지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3. 3. 28. 06:30

벌레 / 최지은

 

이 방의 주인은 아무 때나 이 방의 불을 밝히는 사람이다

갑자기 환해지고 한꺼번에 어두워지는 이 방에서

 

자매는 종종 이불 위에서 논다 언니는 부모됨을 배운다며 달걀을 품고 다니고

동생은 국어책을 펼치고 앉아 괄호를 그리고 있다 이 괄호와 저 괄호가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건너뛰며 놀러 다녔다

지워지는 비밀들이 생길 때마다 슬픈 소설이 되어갔다

 

둘은 등을 맞대고 눕는다

양쪽 날개가 다른 나비처럼

 

사람이 사람을 낳는다니

신기하지 않아?

여자가 아들을 낳는다니

두렵지 않아?

자매는 슬픔을 견주는 사이래

취향은 언니가 낳아주는 거래

 

동생이 잠들때까지

둘만의 스무고개 둘만의 끝말잇기

둘만 아는 이름을 불러와 놀려주고 쓰다듬다가 아주 잊어버리고

 

나눠 마시는 물 한잔의 밤

거꾸로 맺힌 물방울의 방

 

그 안에 둘

 

계속 들여다보면

물방울 끌어당기듯

 

함께 흘러내렸다

 

물 위에도 집을 짓고 사는 벌레들이 있었다

때로 너무 작은 벌레들은 있는 힘껏 손가락을 놀려도

죽지 않았다

 <최지은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아요' 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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