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 ■ 시를 잘 쓴다는 말에 대해
시를 쓰는 사람 중에는 시를 쓸 때 더욱 신중해지는 사람과, 시인이 다 된 양 폼을 잡고,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갑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시를 알아갈수록 겸손해 지지만 후자는 자기를 드러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시란 평생을 공부해도 그 답이 없을 만큼 심오하고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한 것인데 아무리 훌륭한 시인이라도 시를 통달한 것처럼 한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 가짜다. 신이 아닌 이상 사람살이를 다 알 수 없듯 삼라만상과 온갖 인생을 담고 있는 시를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 평론가도 글쓴이의 의도와는 다른 엉뚱한 해석을 내어놓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등단한 사람보다 훨씬 시를 잘 쓰는 사람도 많다”라는 생각으로 겸손할 필요가 있다. 물론 등단 하고 나면 시인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노력하여서 시가 점점 좋아지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가끔 시를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잘못하면 시도 망치고 자신도 망치게 된다.
영국 황실에서 시인에게 내렸던 가장 영예로운 벼슬인 계관시인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원래 이 칭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때 대표 시인으로 선정된 사람에게 명예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씌워준 전통에서 유래했다. 한동안 그 명맥이 끊겼다가 현재는 '국제계관시인협회(UPLI)'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김소월, 한용운과 더불어서 근대 3대 사랑 시인으로 꼽히는 김남조 시인이 첫 수상자였고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원로 시인인 곽상희 옹이 두 번째 수상자로 순금 월계관을 부상으로 받았다. 곽 시인은 국제계관시인협회 실무자였기에 자기 머리에 자기가 월계관을 씌운 꼴이었으니 사실상 김남조 시인이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계관시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김남조 시인은 계관시인의 칭호를 받기는 했지만 “시인은 벼슬이 아닌데 부끄럽다”라고 했다. 그리고 “시인은, 열심히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즉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시인의 자격이 없다.”라는 말이다. 나의 시인론인 “시인은 벼슬이 아니라 겸손하게 삼라만상의 방언을 해석하고 통역하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뜻이 통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겸손’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교만하지 않다. 우리의 편협한 시각과 좁쌀 같은 지식으로 세상을 어찌 모두 해석하겠는가? 그러므로 시적 서정성으로 세상을 겸손하게 필경(筆耕)하거나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것에 의미와 생명을 부여하는 따뜻한 시인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죽어가는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글이 폭력적이면 시적 대상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독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글일 수도 있다. 시를 읽는 사람이 행복해지거나 공감되지 않으면 실패한 시다. 또한 겸손한 시인은 남의 시를 평하는 일도 조심한다. 요즘은 자기에게서 공부하는 제자라도 시를 지적하거나 꾸중을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또한 우리 밴드처럼 얼굴도 성향도 제대로 모르는 상대방에게 좋은 뜻이라도 가르치듯, 훈계하듯 잘못 지적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떤 이는 비평 자체를 기분 나빠한다. 그러나 비평과 비난을 구분할 줄 모르면 시를 쓸 자격도 없다. 비난이 아닌 비평은 시를 키우는 자양분이고 글에 대한 큰 관심의 표현이기에 “아, 저렇게도 해석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처음 시를 쓰는 사람은 대부분 잘 쓰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너무 잘 쓰려고 애쓰지 말라. 잘 쓰려고 애를 쓰면 시도 안 되고 곧 힘도 빠진다. 욕심을 버리자. 내가 잘 아는 주변의 이야기를 산문 형태로 자연스럽게 쓰고 싶을 때 쓰자. 제대로 된 시는 그 시의 등뼈 같은 줄거리가 있다. 이야기 형태로 일단 써놓고 말을 압축시켜가는 작법을 반드시 버릇처럼 몸에 익혀야 한다. 물론 줄거리를 무시하고 실험적인 시를 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배울 땐 기초부터 제대로 배워야 시의 기반이 단단해진다. 시가 되도록 하는 것이 기초 중의 기초라고 이 강의를 통해서 계속 말하고 있지만, 시의 기초보다는 자기의 감정에 취해서 줄거리가 실종되어 중언부언하는 듯한 글이 가끔 보인다.
오늘은 더욱 쉽게 시가 되게 하는 방법을 다시 소개한다. 단, 이 방법도 시 쓰기의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공부하고 시를 써오면서 얻은 결론이기에 따르고 안 따르고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있다. 시론이란 100인 100색이기에 그렇다. 누구의 시론을 따를 것인가는 그 사람의 시풍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 나의 강좌는 시가 우리의 삶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하도록 써보자는 생명시 운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시 쓰기의 1단계, 시의 서술(설명)
어떤 대상을 설명하는 단계다.
이 단계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 세상의 온갖 것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 바로 백과사전이다. 백과사전처럼 무엇을 설명하지 말라. 휴대폰만 있으면 다 검색되는 내용을 조합하여 글을 쓰지 말라는 말이다. 가식적이거나 지식을 뽐내려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명한 시를 읽어보면 이런 설명적인 과정을 거의 생략한 것을 볼 수 있다.
시 쓰기의2단계. 묘사하기
서술과 비슷하지만, 묘사에는 약간의 나의 관점이 들어갈 수도 있다. 묘사만으로도 시를 쓰는 시인이 있지만 그런 형태는 정말 시를 잘 쓰는 시인이 아니라면 나와 관계없는 껍데기 시에 불과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묘사는 진술을 위한 징검다리다. 묘사를 잘해야 시가 풍요롭고 맛있게 되며 제대로 된 시인의 문턱을 넘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시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 쓰기를 권한다.
시 쓰기의3단계, 진술하기
‘무엇을 말하는 단계’가 묘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는 단계가 진술이다. 서술이나 묘사가 객관적이라면, 진술은 주관적이고 철학적인 것을 포용한다. 배롱나무 꽃의 아름다움을 나열하면 설명이나 묘사가 되지만 그 배롱나무의 꽃 이미지가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말하는 단계가 진술이다. 진술의 단계부터 시라고 봐줄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시가 되려면 다음 단계가 또 있다.
시 쓰기의4단계. 내 이야기로 만들기
위에서 언급했듯 줄거리가 없는 것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는 단어 나열에 불과하다. 묘사와 진술이 결국 화자의 이야기를 위한 비유이거나, 은유적 이미지와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시가 완성된다. 적합한 언어, 적합한 자리, 난삽하지 않은 언어를 짜임새 있게 조립하여 이야기를 완성하는 단계다. 위 2,3단계가 나무를 키우는 단계라면 4단계는 열매를 수확하는 단계이자 시의 핵심이다.
편의상 4단계 구조로 설명했는데, 1, 2단계가 아마추어 수준이라면 3단계와 4단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시인의 길에 온전히 들어선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자.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시인이 되기 때문이다.
■ 이주의 회원 작품 한 편 감상
트로트
벼리영
1.
노랫말을 부화한 방이 고개를 넘고있어요
아득한 단장의 고개, 거북이가 슬어논 알이 깨어나 사막을 채색하는 길
바다로 달리던 새끼가 군함새에 잡혔어요 슬픔을 모르고 끝나버린 생애가 구름 뒤로 사라졌지요
흑주 머금은 구름의 눈은 당신의 우물처럼 깊어요
가난은 진균처럼 달라붙어 음지로 내몰렸던 꿈, 엄마의 고개가 무늬를 그리며 목청을 세워요
비틀어 놓은 고개는 벽에 길을 내고 바닥은 축축해요
2.
다려도 다려도 펴지지 않는 집은
등선에 서있는 신기루입니다
경추 한 마디가 어긋나 버린 고개는잡히지 않는 집
당신 엄마는 집 찾아 떠난 걸까요
내 엄마가 슬픔 묻힌 사막의 자세로 노래를 합니다
엄마가 엄마를 노래하면 칼날이 돋아나 눈꺼풀을 찌르고 소리는 풀벌레처럼 흔들립니다
슬픔을 모은 바닥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 무명 저고리 입은 여인
고개를 넘고 나니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맺혔던 소리가 스르르 풀립니다
*트로트 가사 차용 <이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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