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곰탕 한 그릇 / 강경화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3. 2. 20. 07:58

곰탕 한 그릇 / 강경화

 

입안에 가시 돋으면
곰탕집이 생각난다
어릴 적 입 양 옆이 갈라지면 데려가시던 곳
아버진 “입이 크려나 보다”
더운밥을 말아주셨다

뚝배기 속 식지 않는 허기를 저을 때
수저 따라 옮겨 앉던
밥알 같은 삶이
이 저녁 물 말은 찬밥에 짠지처럼 얹힌다
(시집 ‘나무의 걸음’, 아꿈, 2022.)

[시의 눈]
한 톨 밥알은 내 생애와 함께했지요. 떨어지면 주워먹던 한 톨. 난 한때 취직 시험에 낙방하고 아버지 따라 농사를 이었습니다. 다섯 마지기에 온 식구가 매달렸지요. 봄날은 「서편제」 고갯길처럼 아득했고 배는 수시 고팠습니다. 입안이 궁금해 가시가 돋을 즈음, 회관 앞에는 가마솥이 걸렸습니다. 고기는 적고 시래기 많은 곰탕국을 끓였지요. 입이 크려는 내게 아버진 당신 몫의 국물을 더 부어주곤 했습니다. 입 가장자리 째진 틈에 쓰린 국물을 넣으며 춘궁(春窮)을 견뎠지요. 참, 지내고보니 그때가 행복했군요. 지금은 고깃국 신호는 없습니다. 고혈압에 위장병에, 채식이 그 답이란 지경에까지 왔습니다. 한데 보아하니, 더운밥을 말아먹는 호시절이 동네 곰탕집에 몰려왔습니다. 연일 대만원 대박나 대경사 났지요. 허, 코로나 후, 입 크려는 사람이 이리 많다니요. 강경화 시인은 광주에서 나 1999년 ‘금호문화’와 2002년 ‘시조시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한다’(2014), ‘메타세콰이어 길에서’(2017)가 있습니다. 그는 굴곡지고 가난한 이들을 품으며 고초의 생명성을 줄기차게 표출하는 의지의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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