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 정호승
나에게도 발을 씻어야 하는 슬픈 시간이 찾아왔다
깨끗이 발을 씻고 새 옷을 갈아입고
당신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 해가 지면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발을 닦고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었으나
오늘은 나의 발을 닦고 고요히 당신을 기다린다
해는 지고 노을 속으로 새 한마리 날아간다
나는 사라질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몰의 순간에 굳이 일출의 순간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없으면
일출의 아름다움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생에 단 한번 일몰의 아름다움을 위해 두 팔을 벌린다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는 일몰의 순간은 찬란하다
결국 모든 인간이 아름다운 까닭은
일몰의 순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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