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졸업식 / 이근화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3. 2. 16. 17:47

졸업식 / 이근화

 

단단하게 묶인 리본의 방향은 다 같지가 않다

목이 졸린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을 뿐

발걸음을 재촉하며 교문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부지런히 박수를 치겠지 만 곧 끝날 것이다

긴 복도와 더러운 계단과 삐꺽거리는 문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학교 근처에는 시멘트 공장이 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경적이 울린다

먼지를 일으키며 트럭이 지나간다

빙글거리며 돌아가는 시멘트 반죽들이

어딘가로 실려가 부지런히 굳어갈 것이다

계단도 되고 담벼락도 될것이다

누군가 덜 마른 바닥에 앙증맞은 발자국을 찍을 것이다

의문의 방향이 남겠지만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혹은 되지 않기 위해서

소녀들은 울고 웃었을 테지

국수를 삼키고 사탕을 빨았을 테지

뜨겁고 달콤한 것들이 목젖으로 자주 넘어갔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찬물 속으로 오리들이 처박힌다

천변은 가지런히 정리가 되었지만

기러기도 비둘기도 서성거린다

조류를 보호해야 하는 이곳에서

아무도 사냥총을 쏘지 않는다

궁도장의 화살이 산책로로 날아드는 일도 없다

나무 쪼개지는 소리를 잡풀들이 건들거리며 엿들을 뿐

 

푸른 하늘을 쩍 가르는 비행운은

마치 총알이 날아간 자국같다

소리가 없고 상처가 깊다

가슴에 알알이 박힌 시간들이 언젠가 풀리겠지만

천변가로 밀려온 죽은 물고기들을 

아무도 건져 먹지 않는다

죄지은 얼굴을 자신의 입으로 주워 삼킬 수는 없으니까

 

반질거리는 스타킹과 긴머리칼들이 몰려나온다

새하얀 운동화들이 바닥을 꾹꾹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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