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喬木) /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리.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시집 ‘광야’, 미래사, 1991.)
[시의 눈]
겨울나무들은 광야에서처럼 휘파람으로 웁니다. 곧게 벋어 오르는 교목들은 투명한 호수로부터 사열을 받습니다. 나무들은 ‘세월에 불타고’, ‘낡은 거미집’에 감겨 ‘검은 그림자로’ 서 있습니다. 저 쓸쓸함에선 차라리 잎꽃도 피지 말기를, 끝없는 꿈길 혼자만 설레기를, 거꾸로 선채 호수도 모르길 바라는 그 자학이 묻어납니다. 천형과 같은 적막일까요. 눈 내리는 겨울밤의 고독이란 발가락이 터지듯 맨몸으로 나는 것이겠지요. 일제강점기의 시인은 이를 두고 바람도 흔들지 못할 거란 의지를 비칩니다. 오늘날 가난하고 핍박받은 이들의 겨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할머니가 눈 쌓인 언덕으로 페지 수레를 달고 오릅니다. 마침 맞은편에 아이들이 썰매질을 하는군요. 아이들 엉덩이엔 저마다 박스 종이가 깔려 있습니다. 모으면 수레를 더 채울 듯 합니다만, 할머닌 교목처럼 서고 맙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방해될까 봐 부러 오던 길을 돌아갑니다. 이육사(1904-1944) 시인은 경북 안동에서 나 독립운동의 시인이자 지사였습니다. 1940년 1월호 ‘문장’에 ‘광야’· ‘청포도’ 등을 발표했고, 시집으로 ‘육사 시집’(1946)이 있습니다. 그는 식민지 탄압에도 굴하지 않은 불같은 의지를 시에 상징화한 혼투의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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