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춰주는 그대는 제일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 쓰면 한 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시인의 시 '편지'는 첫 행에서 일견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면서도 동시에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고 규정한다.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드러내는 대목이다. 즉, 그대는 위로의 대상이면서도 상처의 원인이 되는 복합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
2연의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는 표현은 가장 사랑스러운 그대가 나를 가장 외롭게 만들고, 또한 가장 정직하게 만들어 줌을 아프게 느끼는 대목이다. 그리고 “내 안을 비춰주는 그대는 제일 영롱한 거울”이라 한다.
여기서 거울은 단순한 반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게 만드는 존재를 상징한다. 즉, 나를 바로 보게 하고 새로 시작하게 하는 힘을 가진 위대한 존재임을 뜻한다.
그러면서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나의 시작이다”라고 단정한다. 이는 사랑을 통해 비로소 참된 자아를 만나게 된다는 고백으로 읽힌다. 그대를 이해하는 끝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의 시작을 발견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랑이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의미다. 그대는 상처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사랑시 이면서도 자기 발견의 시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연의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로 인해 한 번도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아닐는지.
김남조의 시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상처,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을 노래하면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된다는 깨우침을 잔잔히 보여 준다.
[여성소비자신문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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