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

경칩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3. 5. 05:52

경칩

어제까지 얼어 있던
논둑의 숨이
오늘은 조금 따뜻하다

땅속 깊이
귀 기울이던 씨앗 하나
먼 천둥 소리에 놀라
살며시 몸을 뒤척인다

겨울은
모르는 척 물러가고
마른 풀잎 사이로
연둣빛 한 점
몰래 웃는다

개구리 한 마리
꿈에서 먼저 깨어나
물가에 봄을 풀어 놓고

바람은
차가운 끝을 접어
햇살에게 자리를 내준다

경칩

잠들었던 것들뿐 아니라
내 마음 속
묵은 생각들도
놀라 깨어나는 날

오늘은
가만히 귀를 대어 본다

내 안에서도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소리

어등산과 황룡강에서

어등산 자락에
묵은 눈빛 하나가 녹아내리면

황룡강 물살도
살며시 기지개를 켠다

밤새 얼어 있던
강가의 숨결 위로
연둣빛 기척이
조심스레 발을 딛는다

천둥은 멀리서
문을 두드리고

땅속에 웅크리던 것들이
놀란 듯
흙을 밀어 올린다

논둑의 풀씨 하나
강물에 비친 하늘 하나
작은 떨림 속에
봄은 이미 다 와 있다

어등산 바람이
겨울의 끝자락을 접어
황룡강에 띄워 보내면

내 마음 깊은 곳
묵은 침묵도
경칩의 이름으로 깨어난다

오늘

산은 말없이 푸르고
강은 조용히 흐르며

나 또한
한 뼘 더
봄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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