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박주영 시인의 디카시 한 편과, 그리운 김 승 시인 1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가시論
오늘은 박주영 시인의 디카시 한 편과, 그리운 김 승 시인 1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가시論
외로움이 깊으면
서로의 가시가 되지
찌르기 위해서 아니야
지키기 위함이지
_박주영
박주영 시인의 디카시「가시論」은, 철학적 직관(촉)을 시의 구조로 치환하여 "외로움이 깊으면 가시가 되기도 하지만, 서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한 가시"라는 역설(逆說, paradox)로 진술한다. 후경으로 제시된 시적 문장인 의미론적 축과, 전경인 사진의 증명 이론적 축을 잘 합일하여 '꽃과 열매를 지키는 존재'로서의 가시론으로 가시화(可視化) 했다. “철학이 결여된 예술은 향락에 불과하고, 예술이 결여된 철학은 냉소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다. 철학과 예술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예술디카시를 지향하므로 철학(시인의 진술)을 담으려는 시 작법을 장려한다. 위 디카시는 치열한 인생살이에 대한 철학적 응시다.
“당신을 위해선 죽을 수도 있다”라고 사랑의 맹세를 하던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그리곤 그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불만'이라는 가시로 자라난다. "방귀 잦으면 X 싼다"라는 속담처럼 불만이 많은 사람은 결국 배신하게 된다. 상대에게 바라던 ‘기대’라는 환상이 깨어지기 때문이다. ‘기대’란 상대방이 나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완성 된다. 인간 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상화되긴 힘들다. 진정한 사랑은, 좀 부족해도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면 쉽게 판단하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조급한 사람은 조그마한 문제가 생겨도 잘잘못을 따지게 되고 싸움으로까지 진행시킨다. 싸움이란 물리적 폭력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는 말의 폭력전이다. 작은 가시라도 찔리면 아프다. 이런 관계가 잦으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불만이라는 가시를 키우는 사람은 자기는 옳은 말을 한다고 합리화 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몰아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무조건 믿어보고 기다려 줄줄 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야지만 행복을 유지할 수 있고, 불행이라는 상처를 막을 수 있다.
몇 해 전 어느 행사에서, “외로움이 깊어지면 분노가 되고, 성실이 깊어지면 과로가 되며, 휴식이 깊어지면 나태가 되고, 반성이 깊어지면 죄책감에 살게 된다”라는 내용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다. 결론은 그런 불행의 씨앗을 심지 말고 “지금 행복해야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지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 시를 쓰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순간이 모여서 삶을 이루므로, 먼 행복을 위해 지금이라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을 저축해야 나의 삶이 풍요롭고 즐거워진다. 행복과 즐거움은 내 주변에 널려 있는데 그것은 외면하고, 불만의 조건을 자꾸 찾아내어 저축하는 사람은 결국 불행해진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믿고 기다리며 감사의 조건을 만들면 서로를 찌르는 가시가 생기지 않는다. 위 디카시처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가시라 하더라도 가시의 위험성은 항상 나를 먼저 찌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인간관계에서는 가시보다는 ‘포용’이라는 꽃이 피면 좋겠다.
박주영 시인은 계간《시와편견》과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뉴스N제주 신춘문예 디카시 부문 당선으로 디카시인으로 등단했다. 또한 그는 사진작가이면서 시로도 오래전에 등단한 시인이다. 디카시집『돋아라, 싹』은 이번에 2쇄를 찍었을 만큼 인기가 있다. 그의 디카시는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디카시’와 가장 가까이 닿아있다. 사진의 예술성도 잘 표현하지만, 시적 문장과의 조화도 높은 수준이다. 다만 그는 주로 꽃 사진과 자연을 즐겨 찍는데, 우리 주변의 이야기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 한국디카시단의 맨 앞줄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그에게 더 큰 시적 성취와 영광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한다.
혈서
김 승
나는 하늘도 업신여기는 시인
단단한 뿌리로 담벼락 움켜잡고 벽화를 동백나무 칭칭 감아 붉은 생각 읽어
들으며
바늘구멍만 있어도
담 밖으로 뻗어나가 담쟁이 마음
순식간에 빼앗는다
잘리면 잘릴수록 더 빨리 자라고
더 깊고 더 넓게 뿌리를 뻗으며
악착같이 담장에 쓰는 일기
검붉은 시로 피어날지니
달아나는 문장을 쫓아 새벽까지 잠 못 들고
여백이 있으면 끊임없이 써나갈 수밖에 없는 시인의 운명
용서하라
담 밖으로 떨어지는 주홍빛 최후를
김승 회장이 평소에 좋아하던 꽃을 떠올리며 그의 무덤 앞에 놓을 꽃바구니를 준비하면서 또다시 가슴이 먹먹하다. 그가 슬프지 않도록 꽃바구니를 화려하게 만든다.
11월 14일, 사랑하는 김승 시인이 떠난 지 1주기다. 나는 이 강좌를 밴드에 올려놓고 경북 봉화군 봉성면 금봉리 산에 묻혀있는 그를 만나려 출발한다. 진주에서 그의 묘소까지 3시간 반이 걸린다는 거리를 핑계로 그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한 미안함에 또다시 명치끝이 아리다. 그는 시가 밥이었고, 우리 시사모와 한국디카시학회 동인회장, 그리고 계간《시와편견》의 편집인으로써 우리 시단 모퉁이의 돌이라도 되는데 진심으로 헌신했다. 아무 조건도 없이 음으로 양으로 우리를 도와주던 큰 산이었다.
위 시는 불안과 절망 속에서 자기의 실존적 고통을 펜에 피를 찍어서 쓴 시다. 불행과 지독한 병마 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내면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몸부림이요, 못 견딜 만큼 아픈 실존으로서 마지막 혈서다. 그는 “하늘도 업신여긴 시인”이라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의 짧은 생애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가 뿌린 많은 씨앗이 곳곳에서 뿌리를 내려, 잎이 무성하고 꽃이 피고 있다. 더러는 열매도 맺는다. “큰 꿈을 펼치던 사람은 그 꿈이 깨어져도 조각은 크게 남는다”라는 말은 우리 김승 회장을 두고 한 말 같다. 마지막까지 시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속도의 이면'이라는 가장 힘들 때 쓴 시집 등 네 권의 시집을 남겼다. 또한 보이지 않게 시문학은 물론이고 음악과 장학사업에도 큰 기여를 했다. ‘경남챔프오케스트라’ 부단장을 하면서 지역의 음악발전에 이바지해 왔었고, 경남지역의 가장 큰 민간문화단체인 ‘합포문화동인회’ 이사로써 여성, 음악, 교육사업 등에 큰 역할을 했었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향을 쌌던 종이 같은 김승 시인, 그가 떠난 후 향기는 지금도 곳곳에서 풍기고 있다. 진정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진한 그리움에 코끝이 맵다.
오늘은 김승 시인의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위 시를 올려 본다.
글_ 이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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