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편(詩篇) / 홍성란
사랑도 몸 무거우면 이별을 낳으리니,
이별도 길이 멀면 그리움을 낳으리 그리움 깊어지면 눈물에 뭉개지리 뭉개져 시고 떫은 미움을 낳고 원망을 낳고 낳아서는 애인 떨어져나가듯 사랑도 새 물감이 드니,
콧날이 문드러져도 원수같이 붉은 사랑!
(시조시집 ‘따뜻한 슬픔’, 책 만드는 집, 2003)
[시의 눈]
문학성과 대중성, 이 둘은 언어예술의 피치 못할 절대 요건. 시학의 완결성을 겨냥한 필요 충분조건은 치밀함과 섬세함의 미학주의를 바탕으로 갖춰지게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 세계와 자아의 연동을 인식해 내밀한 언어로 집요하게 삶을 탐문하는 시인의 자립적 의지가 시선을 잡아끈다. 가을, 도대체 가을이란 이 특별한 계절이 시인의 서정적 자아를 어떻게 건드리고 움직였기에 ‘사랑도 몸 무거우면 이별을 낳으리니’라는 전제를 깔만큼 무섭고 쓸쓸한 그리움의 시상을 전개토록 이끈 것인가. 세계와 자아의 성급한 화해로 마무리되곤 하는 일반 서정시와 빛깔을 달리 한 ‘가을 시편’, 들여다보면 사유의 연쇄적 연결고리를 지어 원수같이 붉은 사랑의 부조화를 차근차근 아픈 기억 속에서 토로하고 있다. 강물에 풀어 흘려보낸 서정적 자아의 사랑과 이별. 긴 이별과 깊은 그리움과 뭉개져 시고 떫은 원망과 애인 떨어져 나간 한참 후에야 잘려 나간 물감들이 주섬주섬 새 빛깔로 내면을 물들이는, 그리하여 사랑과 이별은 또다시 가슴을 치는 아픔과 성찰의 언덕에 서정의 주체를 홀로 세워놓는다. 이별과 붉은 사랑, 그리움의 상채기를 낳는다는 상동성으로 결합된다. 처연한 아름다운 이별이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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