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는 소리 내 읽을 때 비로소 얼굴을 보여준다. 낭독하지 않으면, 시는 닫힌 창문처럼 군다. 풍경이 보이지만 그 풍경은 창문만큼의 오려진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력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런데 시를 소리 내 읽으면, 읽기만 하면 시는 창문을 지우고, 독자를 풍경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얼굴을 보여준다.
이 시를 처음 눈으로 읽었을 때는 시 쓰는 일에 대해 은유적으로 잘 형상화한 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시에 더 닿고 싶어 혼자 천천히 낭독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는 자정에 시를 쓰러 모인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의 손을 잡고 둥둥 떠올랐다.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면서 강강술래를 했다. “희박한 얼굴과 부푼 등”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내일도 아닌 시간”, 즉 자정에 모여 돌고 도는 일! 시를 쓰는 일은 시간의 테두리를 지우고 공간의 둘레를 확장하는 일이다. 다시없을 원을 만들면서.
시를 쓰러 모인 이들에게 ‘왜’라는 질문은 넣어두자. 대신 이들의 기분을 느껴보자. 시 쓰기는 “작은 추락”을 자주 만드는 일, “노래를 공기에 밀어 넣는” 일이다.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 되는 일이다. 당신이 열린 내 몸으로 들어와 피톨처럼 혈관을 타고 돌게 하는 일이다. 이때의 강강술래는 피의 순환이요, 우주적 열림이 된다.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접속하는 일이다. 어쩌면 시인들은 이 기분을 잊지 못해 평생 시에 매달려 사는지도 모르겠다. 시는 사람을 강강술래 하게 만든다. 우주적 기분으로 고유한 음악을 짓게 한다.
[농민신문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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