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근성 우영팟 / 김수열
어처구니없이 넘어간 무근성 옛집 우영팟
예전처럼 고추며 상추들 착하게 자라고 있다
빈집 되면 텃밭도 빈털터리가 되어
검질만 왕상할 줄 알았는데, 웬말인가
어머니 손 있을 때 자라던 그대로
어머니 없어도 기죽지 않고 으쌰으쌰
여리고 푸른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어머니가 왜 집을 떠났는지 물을까 하다가
혹시나 눈물 그렁그렁 속이 상할까 꾹 참고
곧 오겠지 틀림없이 오실 거야 생각하면서
다시 돌아올 어머니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하얗고 노란 꽃망울 반짝반짝 피워 올리면서
바람 불면 고개 삐쭉 내밀어
이제나 오카 저네나 오카 주왁주왁 흔들리면서
김수열(1959~)
어쩌다가 시인의 “무근성 옛집 우영팟”이 넘어갔을까. 억울한 그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짐작은 할 수 있겠다. 한때는 복작거리며 살았을 그 집으로부터 가족이 떠나왔지만, 마음은 떠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시인은 그 우영팟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주말인 우영팟은 텃밭을 뜻한다. 우영팟은 여러 가지 채소들이 자라며 살림을 돕던 채전이었다.
그 옛집이 “빈집 되면 텃밭도 빈털터리”로 “검질”만 잔뜩 있을 줄 알았는데, 어머니 손길 없이도 푸른 잎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가 기른 것은 자식만이 아니었다.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도 어머니의 자식이었다. 그 푸른 자식들은 작은 잎을 여러 장 내밀어 어머니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곧 오겠지 틀림없이 오실 거야” 서로를 일으키며 “어머니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꽃망울”을 터뜨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버려진 빈집의 우영팟 여기저기서 “기죽지 않고 으쌰으쌰” 자라는 것들이 있다.
[경향신문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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