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자필반(去者必返) / 나희덕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후략)
- 나희덕 '마른 물고기처럼' 부분
소멸 중인 것들에 대한 연민과, 망실돼 가는 것들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인연은 기억된다. 죽어가는 상대를 온몸으로 적셔 서로를 지켰던 저 마른 물고기처럼 한때의 우리도 타인에게서 위로받았다. 연인이 아닐지라도, 그게 모든 인간의 이치 아니던가. 이 시의 2연은 훗날 재회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메마른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으며 삶을 걸어볼 힘을 얻고, 하지만 헤어져 각자의 길을 걷다 어느 날 문득 다시 마주치는 것. 시간이 돌아오지 않아도 여전히 빛나는 비늘 한 점은 모두의 추억 속에 있다.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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