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력 > / 장희수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에 돌돌 굴렀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어떤 마음은 짠 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 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포기할 수 있었다면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휴지 한 칸도 아껴쓰라던 목소리가,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죽을 힘을 다해본다 해도
사람들은
영정 앞으로 다가와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꽃밭처럼,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할머니가 있었던
할머니의 집에서는
「사력」(장희수,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
이 시는 할머니의 부재를 중심으로, 상실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이치를 깨닫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고 있어. 특히 일상의 사소한 장면(휴지가 굴러가는 모습, 국화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 죽음과 이별을 암시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야.
1. 제목 「사력(死力)」의 의미
‘사력(死力)’은 글자 그대로 **‘죽을 힘’**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죽음에 대한 애도와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 속에서도 살아가려는 힘을 의미할 수 있어.
-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유족의 마음이 깃들어 있어.
- 또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힘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2. 시의 내용과 해석
1) 부재와 공허함
할머니가 없는 /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에 돌돌 굴렀다
- 첫 구절에서 **‘할머니가 없는’**과 **‘할머니 집’**의 대비가 상실감을 극대화해.
- 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던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깊은 공허함을 느낄 수 있어.
- **‘휴지가 바닥에 돌돌 굴렀다’**는 할머니의 부재 속에서 사소한 것조차도 의미를 가지는 순간을 상징해.
- 휴지처럼 무언가 멀어져 가는 모습이 이별과 닮았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야.
2) 이별의 이미지 – 멀어지는 것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 하얀색은 상실, 장례식, 국화꽃 등의 이미지와 연결돼.
- 즉, 떠나는 존재가 남기는 공허함과 쓸쓸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사람들은 / 영정 앞으로 다가와 /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 꽃밭처럼,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 장례식 장면이 연상되는 대목.
- 국화꽃을 떨어트리는 행동은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식이지만, 결국 사람들은 떠나고 꽃만 남게 되는 상황이 슬프게 다가와.
- 앞의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와 연결되면서, 하얀색이 이별과 상실의 이미지로 반복돼.
3)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살아가야 하는 힘
어떤 마음은 짠 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 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 ‘짠 맛’은 슬픔과 그리움을 억누르는 감정을 상징해.
-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영양가 없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야.
- 즉,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결국 그것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보여줘.
- 슬픔을 견디고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포돼 있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 포기할 수 있었다면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줘.
- 삶이란 포기의 연속이 아니라, 계속해서 버텨야 하는 과정이라는 철학적 인식이 담겨 있어.
4) 할머니와의 기억 – 생활 속 남아 있는 흔적들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 **‘이제야’**라는 표현에서, 살아생전 포기하지 않았던 할머니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았음을 암시해.
- 한평생을 버티며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죽음을 통해 마침내 끝났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휴지 한 칸도 아껴쓰라던 목소리가,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 **‘휴지 한 칸도 아껴쓰라던 목소리’**는 할머니의 근검절약 정신과 생활 속 지혜를 나타내.
- 이는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고된 삶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가치관을 상징하기도 해.
- 할머니는 떠났지만, 그분의 가르침과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줘.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죽을 힘을 다해본다 해도
-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 → 현실적으로는 할머니의 노동하는 모습이지만, 상징적으로는 삶의 무게를 견뎌온 사람의 태도를 보여줘.
- 하지만 이제는 그 말도, 그 존재도 돌아오지 않음을 깨닫게 돼.
- ‘죽을 힘을 다해본다 해도’ → ‘사력(死力)’이라는 제목과 연결되며, 아무리 노력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3. 시의 주제 및 의미
- 상실과 부재의 공허함
- 할머니가 떠난 후에도 공간(집)은 남아 있지만, 그 공간을 채우던 온기가 사라진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어.
- 소금밭, 휴지, 국화꽃 같은 이미지를 통해 이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했어.
- 삶을 버티는 힘과 포기에 대한 성찰
- 슬픔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포돼 있어.
-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영양가 없다’는 표현에서, 살아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어.
- 기억 속에서 지속되는 존재
- 죽음이 끝이 아니라, 남아 있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떠난 이들의 말과 가르침이 여전히 울려 퍼짐을 강조해.
-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듯, 사랑하는 사람들은 떠나도 삶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야.
4. 결론 – 「사력」이 주는 감동
이 시는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 상실을 견디며 살아가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
- 할머니의 집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 떠난 이들의 모습이 남긴 감각적인 잔상
-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
'합평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어떤 광합성 > 김영곤 (0) | 2025.03.11 |
---|---|
< 카카리키 앵무 > 이주경 (0) | 2025.03.11 |
< 아오키가하라* > 이지우 (0) | 2025.03.11 |
<작은 부엌 노래> / 문정희 (0) | 2025.03.11 |
< 빙하기의 역 > 허수경 (0) | 202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