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문밖의 지옥 / 정호승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2. 17. 07:57

문밖의 지옥 /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 정호승 '밥값'

직장인의 애환쯤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문밖 전체가 지옥일 때가 있다. 물리적인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사람의 한살이는 고통일 때가 적지 않아서,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 잠시 그곳에 다녀와야만 한다.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고는, 불구덩이를 지나지 않고는, 해일에 쓸려가보지 않고는 자기 자신에 이를 수 없다. 그것이 삶이라는 밥 한 그릇을 얻기 위해 응당 치러야 하는 필연적인 대가가 아니던가. 그러나 고통 속에도 사람은 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잃지도, 잊지도 않는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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