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거리 / 이애정
띄어쓰기 붙여쓰기 다 해봐도
숫자와 숫자 사이의 간격은 사치였다
너를 보내고
굽은 등으로 세월을 쓴다
그리움엔 슬픔도 자랐다
너를 보내고
영원성과 영원성의 부재(不在)에 몸을 떨었다
너를 보내고
나는 부메랑을 기다렸다
사랑아
꽃이 진 자리에 꽃이 피고
떠남은 멀지만
돌아옴은 짧게 와주렴
준비된 이별은 없다
(시집 ‘르누아르의 꽃’, 책만드는집, 2024)
[시의 눈]
학교 옆 붉은 지붕, 마당은 온통 화단인, 뒤란이 교실과 맞닿아 있던 당신의 집, 하교때면 그 아래 문구점엘 들렀지요. 당신 만나기나 할 것처럼요. 열린 대문 안 칸나, 백일홍은 눈부셨고 오래 설레었어요. 졸업식 날, 난 오두막 흐린 불빛으로 와 굽은 등조차 잊고 첫사랑을 썼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당신 부재를 다 메우지 못했지요. 내게 반격의 부메랑이라도 던졌더라면 이리 안타깝진 않았을 거예요. 꽃진자리 다시 필때마다 짧게라도 와주려니 했지요. 한데, 혹시만 남긴채 먼나라로 갔구려 당신은. 순간 온힘이 빠졌어요. 무너지는 단풍아래 레이디 가가의 ‘I´ll Never Love Again’, 그리고 시셀 슈사바의 ‘솔베이지 노래’를 듣습니다. 마침 뜨거운 당신이 내 곁에인 양 따라 부릅니다. 이애정 시인은 2005년 ‘문학시대’로 등단했고, 시집 ‘다른 쪽의 그대’(2005)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사랑과 이별의 심리층을 뚫는 통찰로 정교한 감각 툴로 떠도는 그 부재를 담아내는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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