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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고마운 인생과 당연한 인생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8. 25. 05:02
<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고마운 인생과 당연한 인생

자기만의 창법으로 노래를 빚어서 부르는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어느 신문과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올해 76세의 나이에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현역 가수, 세상의 온갖 풍상을 겪다가 45세의 늦깎이에 가수가 된, 선인생 후가수의 길을 걷고있는 사람이지만, 연륜이 더할수록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한다. 그는 "늦게 핀 꽃이 오래 간다"며 주름진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는 사진이 우리 형님 같았다.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소개 한다.

“저는 가는 곳마다 은인이 생깁니다. 개중에 사기꾼도 있지만 돌아서면 결국 도움이 돼요.”

-사기꾼도 도움이 됩니까.

“넘어지면 무릎에 딱지가 생기잖아요. 그런데 넘어뜨린 그 사람 때문에 제가 툭 털고 일어나 걸을 수 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타계한 가수 김민기 씨를 안개꽃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왜 안개꽃인가요.

“다른 꽃들을 위해 배경이 돼 주고 받쳐주고. 자신이 폼을 잡거나 돋보이려 하지 않은 뒷 것, 뒷광대였지요.”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나의 인생 철학과 많이 닮아서다.

내가 “문학계의 뒷광대 역할을 하리라”고 결심한 때가 13년 전부터였다. 무대의 배우가 ‘앞광대’라면, 뒤에서 그들이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뒷광대’다. 그리고 어느 문학모임에서 나는, "꽃이라면 안개꽃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런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은인들이 내게는 많아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김민기 시인을 만난적도 없지만 그런 삶을 살다가 간 이야기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고백하자면 내 인생은 덤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손해를 봐도 본전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끔 손해를 감당하면서 그런 일을 왜 하냐는 사람도 있고, 내 실력도 부족하고 가진 것도 별로 많지 않아서 때로는 "주제 넘는 일이 아닐까?"라고 자문해 보기도 하지만, 문학계의 작은 운동장이라도 만드는 심부름을 하는 일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데 위로를 받는다.

지난 세월 나는 두 번이나 세상을 등지려고 했다. 장래에 대한 큰 절망감으로 농약을 먹었을 때,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나를 들쳐업고 초인적인 힘으로 꽤 먼 거리의 병원에 달려가 나를 살려주셨다. 두 번째는 20년 전쯤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았을 때였다. 그동안 나를 위해 쌓아왔던 모든 사회적 명성과 계획했던 꿈들이 허물어졌다. 재산은 모두 경매에 넘어갔고 사방이 벽으로 막힌 어둠을 더이상 헤쳐갈 용기가 없었다. 유서를 써놓고 밤새 고민했다. 생전 처음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울며불며 신에게 항의했다.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냐고”

정신을 차렸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살인이라고 배웠던 것이 생각났다.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만은 열려있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신다면 나는 당신과 남을 위해 살겠노라”고 신에게 서원(誓願)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모든 자랑과 헛된 것들을 내려놓았다. 어둠 속을 헤매던 내게 내민 손길이 있어서 나는 그의 인도대로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게 되었다. 세 사람의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일어서려면 죽을 힘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펜션의 모든 일을 했다. 열 손가락이 모두 관절염에 걸릴 정도로 빨래며, 청소며 손님들의 뒷치닥거리를 직접 했다. 그러기를 5년, 기적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내게 큰 어려움을 주었던 문제가 해결 되었다. 얼마간의 경제여력이 생겼고, 절필을 하였지만 사실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던 문학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를 위한 문학이 아니라, 서원(誓願)한대로 나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나는 덤으로 사는 고마운 인생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 강좌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 쉽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감사를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살아가는 일이 고맙다. 고마운 인생은 감사할 일이 자꾸 생긴다. 부정적이거나 호의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당연한 인생은 잘 안 풀리는 많은 사례를 경험한다. 요즘 나는, 시를 쓰는 일도 시적 대상을 깊게 응시하고 그것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한다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말과도 같다. 시적 대상에 숨어있는 진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나의 고집이 살아있을 때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 회원 디카시 한 편 감상

개명 신청
내가 꽃에 앉으면 불륜입니까
억울합니다, 요즘엔
주 활동 무대가 이런 곳입니다
이름 좀 바꿔주세요
꽃파리로

_ 강영준


사람이나 어떤 대상에게 굳어진 이미지는 좀체로 바뀌지 않는다. 강영준 시인은 그것을 꽃에 앉은 파리에 주목하면서 재미있게 포착하였다. 옛날과 달리 우리의 생활 환경은 위생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저 파리는 X을 쉽게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꽃을 찾았나보다.

지난 목요일 계간'미네르바' 발행인 문효치 시인의 특강이 우리 시와편견 문화공간에서 있었는데, 문단 생활을 한지 50년에서 얻은 결론을 이렇게 말씀 하셨다. "시는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쓰는 것"이라고.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바뀌듯 시적 환경을 벗어나지 않아야 시인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지금 저 디카시는 우리의 세상살이를 풍자하고 있다. 지금 어떤 환경인지에 따라서 인생이 바뀌는 법인데도 사람에게도 낙인이 찍히면 그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시 쓰기는 바뀌지 않은 고정관념이나 이미지를 깨는 것인데 그런 시각으로 읽어보면 저 디카시는 일정 수준을 넘고 있다. 다만 디카시를 쓸 때, 선택과 집중을 통한 화자의 역할이 그 시의 뼈대다. 즉,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는 촬영법을 조금 더 유념하면 좋겠다. 오늘의 화자는 저 X파리이기 때문이다.

 [이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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