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무심사 / 윤경희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7. 22. 15:00

무심사 / 윤경희

 

세속에 던져놓은 말라버린 눈물처럼

변방에 긴 머리 푼 노숙의 구름처럼

한여름
이승과 저승 사이

덩그렁 적막 한 채
(시조집 ‘아화’, 작가, 2024)

[시의 눈]
장마통 속 찜통더위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 먼 구름밭에 있다는 ‘무심사’를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무심천 건너 무심산의 큰 무심암 아래 자리한 절이라 해요. 몇 해 연인과 이별 후 ‘말라버린 눈물’ 몇 방울이 있지만 허, 세속에 던져버렸지요. 그 외에 책과 글에 대한, 또 가족에의 몇 나부랭이 미련도 그냥 잊고 가려 합니다. 산자락에 이르러 긴 머리 풀고 가는 구름에게 물어봅니다. 아직, 아직 멀었다는군요. 세상 덧없음을 증명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요. 그래, 어쩔 거냐고요. ‘덩그렁 적막 한 채’만 짓고 앗따 이 여름 살다 오겠습니다. 고요의 시체 앞에 곡을 푸는 소요산매미가 내 무심행을 애도하듯 우는군요. 손오공이 삼장법사의 지팡이 따라 천문산 꼭대기 구름밭에 이르듯, 거기 사뿐한 ‘적막 한 채’ 짓고 이 여름만 나고, 다시 그 ‘적막’ 부숴버리고 오렵니다. 한여름 모기의 만찬거리가 된 몸뚱이를 이승에 포기하니, 뭐 홀가분도 하는구료. 윤경희 시인은 경주에서 나, 2003년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월 장원, ‘유심’ 신인문학상 시조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사막의 등을 보았다’(2022), ‘태양의 혀’(2016), ‘붉은 편지’(2015), ‘비의 시간’(2010)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시상의 깊이에 이르는 도(道), 또는 그것을 찾아가는 끈질긴 구도(求道), 아니, 축지법 쓰듯 순간에 거기 이르는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다 / 윤성학  (0) 2024.07.22
우리 삶에 수많은 길이 있어도 / 막심 박다노비치  (0) 2024.07.22
햇살밥 / 정우영  (0) 2024.07.22
불문율 / 한혜영  (0) 2024.07.20
민주주의 / 아르튀르 랭보  (0) 20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