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에 말 걸기 / 김애란
꽃집에서 제라늄을 하나 샀습니다
제라늄을 내 방에서 제일 환하고
제일 잘 보이는 창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화분 하나 새로 들였을 뿐인데
칙칙하던 방이 화사해졌습니다
인터넷에서 제라늄 키우는 법을 검색해서
그대로 합니다
흙이 마르기 전에 물을 듬뿍 줍니다
잎에 물이 닿으면 안 됩니다
꽃잎이 떨어지면 다시 피우라고 잘라 줍니다
제라늄과의 동거는 조금은 번거롭지만
그래서 사는 거 같습니다
다녀올게
밖에 나갈 때마다 제라늄에게 인사를 합니다
나 왔어
들어와서도 합니다
밥 먹자
정말로 밥을 같이 먹을 수는 없지만
제라늄이 말은 못 하지만
제라늄에게 말을 걸면
누가 있기라도 한 듯
외로움이 조금 가십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무서움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자려고 누워서도 말을 겁니다
잘 자
[김애란 '열여덟은 진행 중' 창비교육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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