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이정훈
하루 식전엔 누가 대문 밖을 서성거리기에 문 빼꼼열고 봤더니 그 눈치 없는 것, 봉두난발에 흙발로 샐쭉 깡통 내밀데요 언제 동네를 한바퀴 돌았는지 흰쌀에 노랑 조, 분홍 수수, 자주팥 없는 것이 없는데 그냥 보내기 뭣해서 보리 싹 한줌 얹어 주었지요 고것이 인사도 없이 뒤꿈치를 튀기며 가는데 멀어질수록 들판은 무거워지고 하늘은 둥둥 가벼워지고 먼 개울가에선 버들강아지 눈 틔우는 소리 들려왔어요 참 염치도 없지, 몽당숟갈 하나 들고 따라가고 싶더라니까요
[이정훈 '쏘가리 호랑이' 창비 2020]
728x90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레코드판에 나는 소리를 내며 새들은 습지를 날고 있을 것이다 / 리산 (0) | 2024.03.12 |
---|---|
말씨는 곱게 말 수는 적게 / 이채 (0) | 2024.03.11 |
봄비 지나간 뒤 / 박형 (0) | 2024.03.11 |
리폼 / 정경화 (0) | 2024.03.11 |
밝은 곳에 거하기 / 설하한 (0) | 2024.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