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임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그 절에 피는 꽃이 한두 가지랴마는, 선운사 하면 동백꽃이니 숨은 꽃들이 서운도 할 것이다. 봄가을 따스한 볕에 다투어 피는 꽃이야 지천이지마는, 눈 속에 피는 동백꽃 붉은 입술을 알기나 알아 시샘하겠는가. 질 때 지더라도 분분히 날리기 싫어 모가지째 툭 떨어지니, 꽃 보러 와서 듣고 가는 사연이 발에 채일 것이다. 꽃 지는 건 쉬워도 님 잊는 건 한참이라지만, 꽃 진 자리마다 씨방 부푸는 것을 왜 못 보시나, 모른 척 하시나. 꽃도 님도 떠나간 뒤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영영 한참이라네.
<서울경제신문 시인 반칠환>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9KOSJ7NCD/GG03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월에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이채 (0) | 2023.02.01 |
|---|---|
| 이월 / 권창섭 (0) | 2023.02.01 |
| 옷 입다 생각하니 / 천양희 (0) | 2023.01.31 |
| 2월의 기다림 / 이채 (0) | 2023.01.30 |
| 옥수수 수프를 먹는 아침 / 이제니 (0) | 2023.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