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고요의 신 / 길상호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3. 2. 19:13

고요의 신 / 길상호

 

오르막 계단 길
몽뚱어리 하나만도 무거워
그림자 떼어놓고 오른다
난간을 잡고 헐떡이던 숨소리
잠시 민들레처럼 주저앉아
샛노래진 얼굴을 닦는다
굳어버린 할머니 등처럼
꼬깃꼬깃 사연들 접혀 있는 길
한 해 또 지나면
더 가팔라질 것인데 (후략)
- 길상호 '계단 길' 부분

노년의 시간이란 완만해지지 않고, 더 가혹해지기만 하는 체감일까. 그림자마저 무거워 떼어내고 오른다는 시인의 말처럼, 점점 존재의 잔여를 비워내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수용이며, 삶의 고도에 도착하고자 하는 마음의 절제다. 생을 끝까지 밀고 오르는 시시포스가 시의 할머니로 분화된 것만 같다. 더 가팔라질 것을 알면서도 취해야 하는 자세가 있다. 우리는 매일 그 자세로 살아간다.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지만 결코 제자리걸음은 아닌.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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