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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11. 2. 08:19

■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이유상 시인의 디카시 한 편과, 정진용 시인의 시 한 편을 텍스트로 공부하겠습니다.



남해에서


대가림은 밀물만 불러들이고
썰물은 상처 없이 휘돌아 나가면
죽음도 비늘을 털며 고가에 팔린다

우리도 무통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_ 이유상


위 디카시는 지난주에 있었던 시사모, 한국디카시학회 진주, 남해문학기행 현장 백일장 대상 수상작이다. 전경은 남해 죽방렴(竹防簾)이다. 이 시설물은 500년 넘게 이어져 온 남해지역의 전통 멸치잡이 어업이다. 다른 특별한 도구 없이 남해안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V자 형태로 대나무를 촘촘하게 엮어서 멸치가 한곳으로 모이게 한다. 특히 남해군 삼동면 지족의 물살은 시속 13~15km로 빠른 편이어서 한 번 들어온 멸치가 빠져나가기는 어려운 구조다. 그물로 잡는 멸치와는 달리 이 지역 죽방렴 멸치는 품질이 매우 우수하여 보통 멸치보다 10배 정도 비싼 값에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런 친환경 어업 방식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아서 유엔 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됐다. 인류의 미래를 잇는 세계중요유산이라는 것이다.

이유상 시인은, 현장 백일장의 목적을 잘 살렸다. 주제에 맞게 지역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으며, 사진의 품질도 괜찮지만 시적 표현과의 합일도 뛰어나다. “대가림은 밀물만 불러 들이고/ 썰물은 상처 없이 휘돌아 나가면/ 죽음도 비늘을 털며 고가에 팔린다” V자 형태의 대가림 안으로 밀물과 함께 들어온 멸치 떼를 썰물 후 그대로 건져내어 바로 건조한다. 친환경적이고 깨끗한 멸치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옛사람들이 이 원시적인 죽방렴을 설치한 것은 자기들이 먹을 만큼만 멸치를 잡고 욕심을 부리지 않은 데 있다. 이런 멸치를 '깨끗한 죽음'으로 시인은 본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날 것인데 기왕이면 자연의 원환(圓環) 고리 속에서 우리도 “무통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라고 진화하는 진술이 함의하는 바가 크다. 사진의 촬영 위치를 잘 잡는 것도 중요하다. 이유상 시인의 저 사진은 지족마을 앞의 섬은 잘 담았지만, 죽방렴의 특징적 모습이 잘 나타나도록 초점을 맞췄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일장의 특성상 주어진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작품을 내 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요즘 디카시 공모전이 전국적인 붐이다. 공모전에는 보통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역의 홍보를 위한 주제(목적)가 있는 공모전이다. 예를 들면 [왕십리 디카시 백일장]이나 [영등포 디카시 공모전]에는 그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진취적인 작품이 선정된다. 이런 공모전이나 백일장은, 사진의 현장성과 시적 문장의 합일, 주최측의 의도가 잘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직접 사진을 설명하는 형태가 되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기 힘들다. 또 하나는 자유로운 주제로 실시하는 공모전이다. 이는 작품성이 우선이다. 즉, 사진의 품질도 확보되어야 하지만, 시인의 세계관(진술)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춤에 비유하자면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탱고처럼 사진과 시적 표현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더 큰 의미로 살아나는 형태다.
지족 죽방렴의 전통적 형태



사양(斜陽) 일관(一貫) / 영세시공예사 정진용


세화오일장 둘러볼 때
장사꾼이 짐 싸는 모습 속에
파장(罷場) 쪽으로 걸어온 내 행적 흐른다.

서울 월곡동 지하 공장에서 다림질하고 재단 보조할 때 다들 봉제는 사양산업이라 했다. 시골 갈 때 탄 무궁화호 객차는 칠 벗겨진 형용이 후일에 철도 밥 먹는 내 미래 같았다.

사양(斜陽) 따라 사양(仕樣)대로 흐른 뒤
사람들 썰물 타는 제주도 누리면서

보는 사람 귀하디귀한 시 끼적이는 내 석양 한때가
장사꾼 짐 속으로 딸려 가는 파장(罷場)만 같아

눈물 마렵다. 오일장 좌판에서 눈빛 구걸하는
늙은 호박만 같아 막걸리도 그립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능력자일 수 없으므로 결국 끈기로 버틴 사람이 살아남는다. 인간사는 결코 편안한 삶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 기회에 적응하는 것이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의 인생 여정이 쉽지 않은 것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인생의 사양(斜陽)길과 시 쓰는 일을 동일시하고 있다.
"시골 갈 때 탄 무궁화호 객차는 칠 벗겨진 형용이 후일에 철도 밥 먹는 내 미래 같았다."라던지, 제주의 세화 5일 장이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고, 서울 월곡동 지하 봉제공장이 그랬고, 시 쓰는 일도 그렇다고 한다. “보는 사람 귀하디귀한 시 끼적이는 내 석양 한때가/ 장사꾼 짐 속으로 딸려 가는 파장(罷場)만 같아”에서 시인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사양(斜陽) 따라 사양(仕樣)대로 흐른 뒤/ 사람들 썰물 타는 제주도 누리면서” 기울어진 형편을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그렇게 흐르는대로 견딘 뒤, 옛날같지 않은 제주도를 느긋하게 누리면서 북적이던 제주 5일장 좌판에서 손님 기다리는 심정으로 막걸리 한 잔이 그립다고 한다.

시를 잘 쓰려고 하면 망치기 쉽다. 시는 담백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면서 시 속 사건의 중심에 화자로서의 시인이 주연을 맡아야 한다. 이때 시적 대상은 보통 의인화 된 형태로 시인의 진술(시인의 세계관)이 드러나게 하는 수사법이다.
위 정진용 시인의 시는 꾸밈없고 주제가 명징하다. 시는 이런 형태로 자연스레 쓰는 것이 좋다. 산문은 의미기호(意味記號)로서의 언어, 즉 전달을 첫째 목표로 삼는 실용적인 언어인 데 비해, 시에 사용되는 비 실용적, 은유적, 비유적 언어를 동원하여 독자의 정서를 자극하여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다. 그것은 일종의 상황극처럼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다. 누구나 아는 내용은 싱겁고 재미 없으므로 새로운 해석, 시인의 체온이 남아 있는지 살필 일이다. 매끈하게 잘 쓴 시보다는 서툴더라도 그 시 속의 화자를 독자가 만날 수 있는 시가 좋다. 시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_ 이어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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