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그날 / 김사이
주전자 한가득 물을 끓여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담가놓았다
대야의 물이 빨리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며
갈급증에 손을 넣었다 뺐다 방정을 떨다
은빛 몸뚱이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안개
최루가스가 분가루처럼 뿌였게 덮인
거리에서 유난히 번쩍이던 하이바
도망가다 넘어진 내게
차마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한
백골단의 하이바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끊임없이 모서리를 내리치는 두려움에
둥글어지지 않는 기억
뜨거운 것과 찬 것이 만나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은 사랑일까
델 것 같은 뜨거움보다 표정 없는 차가움보다
뜨뜻미지근한 온도가 더 위험스러워
몸뚱이 안팎으로 등을 맞댄
가장 뜨거웠을 때와 가장 차가웠을 때의
온도가 같아지는 순간
삶은 미끌 미끌 또 미끌 저도 모르게
격렬한 몸살을 앓으면서 가는 것을
[김사이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창비 2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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