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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시 짓기 강좌>디카시의 기본개념 정리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3. 4. 23. 05:40
<토요 시 짓기 강좌>

디카시의 기본개념 정리

1839년 프랑스의 다 케르(Daguerre, Louis Jacques Mande)에 의해 카메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200년이 넘게 사진기가 발전되어 오면서 그동안 많은 시인과 문학인, 언론인이 사진에 시나 좋은 문구, 또는 메시지를 담아서 발표해왔다. 이것은 ‘사진시’라는 개념으로 확대되긴 했으나 문학의 한 갈래로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진을 설명하거나 시에 사진을 덧붙이는 형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학, 특히 시는 외면 풍경이 아니라 내면 풍경을 통하여 시인의 진술(철학)을 미학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디카시학》에서는 디카시의 개념과 용어를 좀 더 확대 발전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디카시 짓기를 권장하려고 한다. 이것은 한국디카시인협회가 권장하는 방법을 조금 더 구체화하고 작품성의 무게를 두고자 함이다.

디카시 짓기의 '짓기'라는 말은 세상에 널려 있는 온갖 소재로 집을 짓듯 최상의 상태로 짜 맞추는 일이기에 '창작'이란 말 보다는 더 적확한 말이다. 우리는 '디카시 짓기'로 통일하기로 했다.

또한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가 필수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내장 카메라나 요즘의 신형 카메라는 거의 디지털 카메라다. 카메라’가 그려내는 빛의 그림에 작품의 반을 의지하고, 그것과 시적 언술을 통활하여 실시간으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쌍방향 디지털 문학이다. 그러므로 디카시의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왜냐하면 아무것이나 찍은 사진이 아니라 시적 언어를 시인의 시각으로 영상에 담는 작업이기에 그러하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 ‘얼굴’이라면 거기에 합쳐지는 시적 언술은 ‘마음’, 즉 '내용'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양 시학에 등장하는 “사물의 껍질보다는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관물론(觀物論)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된다. 물론 이것은 문자시에서도 적용되는 시 짓기의 중요 개념이다. 디카시는 문자시를 확대, 발전시키는 장르인데 ‘사진 놀이’와 ‘시 놀이' 쯤으로 가볍게 취급되면 시인들이 디카시를 외면하고 공격하는 빌미가 된다.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시인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문학이라면 문학의 한 갈래로 제대로 자리할 수 있겠는가?

국립국어원 우리말 사전에 나와 있듯 “디카시는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라는 말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즉 가벼운 놀이문학이 아니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이 고전적인 문자시라면, 디카시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트롯' 같은 대중문학이다. 그러나 ‘트롯’이라는 대중음악도 아무나 가수가 될 수 없듯, 디카시도 사진의 품질이 좋지 않거나, 언술이 새롭거나 감동이 없고 재미(공감)가 없는 것은 살아남지 못한다.

디카시는 시적 대상이 포착되어 순간적으로 떠오른 서정적 감흥이 있을 때 그것을 찍고, 방금의 그 느낌이 날아가기 전의 시상(詩象/Image)을 메모하는 것이 먼저다. 영상과 언술을 1:1로 결합하여 소통하는 현장성과 즉물성이 강조되는 시의 장르다. 우리는 디카시의 발전을 위하여 그것을 좀 더 확장하는 날시(生詩)적 작법을 권장 한다. 강력한 서정성이 살아난다면 몇 번의 퇴고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디카시를 발표하는 시인의 대부분은 그런 작법으로 디카시를 쓰고 있는데, 현실을 무시한 이론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디카시의 특장인 영상의 품질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그것의 설명이 아니라 시적 메시지, 시인의 진술이 있도록 우리는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시적 대상을 포착할 때도 그 순간이 아니면 그와 같은 장면을 쉽게 얻을 수 없는 현장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훌륭한 디카시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디카시의 작품성을 확보하기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진화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쌓여서 디카시는 특화된 문학 장르 ‘디카시’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디카시의 발전을 관해서 다소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 밴드는 공부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여기에선 부족하더라도 자꾸 발표하면서 매주 신문이나 토요강좌 등에 인용되는 디카시를 참고하고 자기의 작품을 퇴고도 하는 공간이다. 그러면서 디카시를 제대로 써보자는 치열한 연습 공간이다. 흔히 “시를 잘 쓸 수 있을 때 발표하겠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겸손한 자세인 듯해도 나의 경험으로는 그런 사람은 5년, 10년 후에도 지금보다 썩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꾸 써보고 발표도 해보면서 고쳐나가는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다만 문예지 등에 공식으로 발표하는 작품은 좀 더 신중하게 하자는 말이다.   <이어산 시인>


이주의 회원 작품 감상


빈틈

험한 길은 있으나
막힌 길은 없다

돌아 나올 수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_ 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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