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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원 / 조승래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7. 14. 04:55
가족정원 / 조승래
맨땅에서 자라는 막내 채송화
작은누나 봉선화는 가슴에 분홍 물을 채우고
큰누나 장미 넝쿨 담장을 넘어간다
이웃사촌 여치가 날아와 놀다 가고
무당거미 집 한 채 은빛 그물 펼쳤다
아버지는 느릅나무 그늘 조용히 누워있고
오늘도 등불 켜 든 해바라기 엄마
이곳저곳 비춰 주네
-조승래(1959-)
함께 사는 가족은 이 시에서처럼 정원에 비유할 수 있겠다. 정원에는 화초가 자라고, 풀벌레가 가늘게 울고, 시원한 그늘이 내려앉고, 햇살이 들고, 낮밤이 바뀌고 계절이 흐른다. 이 꽃밭은 꽃이 피는 풀과 나무 그 각각이 점점 커지고, 때 맞춰 꽃이 피고 지고, 햇살과 그늘과 빗방울과 눈송이와 바람을 나누고, 서로가 어울리는 곳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하나하나의 꽃에 가족의 이름을 따로따로 달았다. 작은누나는 분홍빛 첫사랑의 감정에 물들고, 사랑을 찾아가는 큰누나에겐 이미 어떠한 벽도 없다. 정원에는 화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이웃은 찌르르찌르르 우는 여치처럼 정원에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버지는 느릅나무 그늘이 되어 정원에 누워있다.
이 시를 읽으면 여름 저녁에 함께 국수를 먹던, 마당의 들마루 공간도 가족에 비유될 수 있겠구나 싶다. 들마루 공간의 위쪽에는 여름밤의 은하가 펼쳐져 별은 들꽃처럼 빛나고, 간간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의 바람은 풀벌레 소리도 싣고 올 것이다.
[조선일보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