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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 민구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7. 4. 10:31
 
 

 

내 반려인은 기념일을 챙기는 게 번거롭고 불필요하다 주장하는 사람이라 좀 섭섭할 때가 있다. 기념일이란 ‘어떤 첫날’이 소중해서, 해마다 그 처음을 기리고 싶은 사람들이 기억하려는 하루다. 사실은 날을 기념하려는 게 아니라 그날을 시작한 ‘사람’에게 사랑과 격려를 전하려는 의도가 담긴 날이다. 364일과 다른 단 하루로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은가.

기념일이 기념할 만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그 일이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어야 한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려면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결혼 생활과 꾸려온 시간을 기꺼워해야 한다. 어버이날을 기념하려면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어버이의 노고에 감사하고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그날로부터 지금까지’라는 시간이다. 많은 기념일이 중도 이탈해 기념하기 싫은 날로 변한다. 인간의 삶이란!

이 짧은 시는 여운이 길다. 딱 네 줄뿐인 시에 누군가의 인생사가 담겨 있다. 이 시에는 한 여자와 남자가 있고, 두 사람이 결혼해 가족을 이룬 시간이 있고, 이제는 장성해 부모의 결혼을 축하하는 아들이 있고, 생활의 고단함을 조크와 푸념으로 눙치는 어머니의 시름이 있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마치 다 들은 것처럼 먹먹한 기분이 든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음악,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큭큭 웃다가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아득해진다. 이들을 가족으로 살게 한 ‘어떤 첫날’이 오래전, 있었던 것이다.

 [농민신문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