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내리는데 / 함진원
비는 내리는데 / 함진원
수수한 사람들끼리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기어이 흥을 놓다 콧물 훌쩍인다
여름비는 차갑게 내리고
집에 갈 생각 안 한 채
버스 끊긴 지 오래
선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불어 터진 국수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달빛 몸 불어오고
파꽃 여물어간다.
(시집 ‘눈 맑은 낙타를 만났다’, 푸른사상, 2023)
[시의 눈]
소박(素朴)은 가공되지 않은 사물의 본바탕, 원래의 모습을 뜻하는 말. 소박미는 인위적 기교가 더해지지 않은 원래의 자연스러움이 풍기는 미적 쾌감이다. 수수한 사람들끼리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다. 화면은 박꽃처럼 소박함으로 물들어 가까이 아주 가까이 숨결이 잡혀든다. 관계의 거리는 간격을 줄여 애착의 거리로 좁혀진다. 미처 깨닫지 못한 일상의 공간 속에서 동질감을 발견한 자아는 뜻밖의 전리품을 얻는다. 안정감과 소속감을 부여받는 것이다. 소박성은 참다운 실재를 파악하는 마음의 눈이다. 그 눈이 빛을 발하는 순간 교감은 속도를 더한다. 스스럼없는 삶의 애환이 오고 간다. 흥을 놓고 덩달아 콧물 훌쩍이며 공감을 주고받는다. 현실의 무게감, 그것은 더러 공감의 파도를 타 넘으며 해소되기도 한다. 상대 영역으로 뛰어들어가 끄덕이고 맞장구치는 사이 삶의 갈등은 봄눈이 돼 사라진다. 소박미는 꾸밈없이 참된 순박한 마음이다. 꾸밈이 지나쳐 시인의 참된 마음을 왜곡하지 않고,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날 때 느끼는 그윽한 내적 힘이다. 불어 터진 국수 먹으면서 애환을 나누는 소박한 미는 그 안에 절제와 함축을 품고 있다. 율곡은 ‘정언묘선서’에서 글의 수식이 지나쳐 시의 맥락이 참을 잃는 것을 우려했다. 참은 소박의 결곡한 열매이다. 순수 감정의 동일체이자 분리되지 않은 공동체의 합일정신이 만나는 지점. 소박한 도(道)는 자연의 이치와 합치하는 법이다. 공감의 공간에서 하나 됨, 그것은 뭉클한 위안이다. 한 요소가 된다. 율곡의 이러한 생각은 청장관 이덕무에게 이어져, 책읽는 바보 이덕무는 ‘수진헌기’(守眞軒記)에서 ‘박소(樸素)’를 교사(巧詐)와 상반된 것으로 보면서 박소를 취하는 이는 참된 것(眞)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화면은 여름 빗소리로 물들고 있다. 객체인 국숫집에 모인 수수한 사람들은 소박미의 주체가 돼 찐득한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버스가 끊긴 시간이지만 관계치 않다. 세상 이야기 공감하며 서로가 완벽하게 녹아들고 있다. 이 공간이야말로.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