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 진헌성
노벨상 / 진헌성
1906년 아버지 톰슨은
빛이 입자라며 노벨상 받고
1937년 아들 톰슨은
빛이 파동이라며 또 받아
빛의 무덤인 암흑세계, 공동묘지를 파 보면
부지기수의 노벨상 밭일 것
그때 가서 누가 개평 좀 떼어주면 받아먹을까 생각.
(시집 ‘운월관산’, 도서출판 한림, 2020)
[시의 눈]
톰슨 부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아버지 톰슨은 빛의 입자설을, 아들 톰슨은 빛의 파장설을 입증한 공로로, 부자가 동일한 연구영역에서 두 명이나 노벨상을 받은 일은 흔치 않아 세인의 주목을 끈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좀 삐딱하다. 시기심이 발동하고 눈에 거슬린 것일까? 아니면 노벨상에 대한 진정성에서 비켜나 돌연 시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른바 관습적인 지각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일상적인 것으로 넘겨버리는 일에 대한 각성을 일으키고자 한 전략일까? 일반 대중이 관성의 법칙으로 보고 있는 사실과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도발적 유도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비판적 거리감, 그 지점이 존재하기에 흥미롭다. 빛, 작은 알갱이들이 빠르게 날아다니는 입자의 흐름일까,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파동일까. 현대 들어 빛의 정체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란 이중성이 신빙성을 얻는다. 시인은 빛의 본거지에 개입하여 간섭하려는 눈치는 아니다. 거리감을 두고 빛의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할 때 개평을 받아먹겠노라 유쾌한 유머를 날린다. 지식의 속박을 비켜나 공명을 목적 삼지 않는 무기(無己)의 경지에서 누리는 소요유 같은 여유로움이 아닐런지.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